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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바나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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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바나나 공화국

입력
2009.07.0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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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쿠데타가 일어난 온두라스는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의 원조 모델이다. <마지막 잎새> 의 작가 오 헨리가 1904년 단편 <양배추와 왕들> 에서 온두라스를 빗댄 가상국가를 그리 불렀다. 은행원이던 그는 공금횡령죄를 저지르고 온두라스로 달아나 수도 테구시갈파에 머문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

양배추는 가난하고 무력한 대중을, 왕들은 소수 기득권층을 상징한다. 그로부터 '바나나 공화국'은 바나나 커피 등 단일 농산품 수출에 의존하며 빈부격차와 부패 쿠데타 외세 개입 등으로 정치사회적 불안이 일상화한 제3세계 국가를 멸시하는 상투어가 됐다.

■온두라스는 1인당 소득 1,000 달러 남짓한 빈국으로 720만 인구의 절반이 절대 빈곤층이다. 120만 명이 실업상태다. 외국자본과 결탁한 바나나 수출기업이 국가경제와 정치를 주무르며, 정치 엘리트 대다수가 기득권 출신이다. 또 군부는 재계와 미국을 업고 1980년대 초까지 군사통치를 했다. 미국은 중남미 좌파 혁명을 막기 위해 우파를 지원하는 전초기지로 온두라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 뒤 미국의 개입이 줄면서 군부를 민간이 견제하는 구도가 그런대로 정착됐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다른 중미 바나나 공화국에서도 1993년 과테말라를 끝으로 군부 쿠데타는 역사의 유물이 된 듯했다. 이런 대세를 거스른 쿠데타를 주변국과 유럽연합, 유엔 등이 일제히 비난한 까닭이다. 늘 쿠데타 배후로 의심 받는 미국도 "모든 정치사회세력이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할 것"을 촉구하며 짐짓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온두라스 사태는 이 나라 정치세력이 너나없이 바나나 공화국의 특징적 행태를 버리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쿠데타로 축출된 셀라야 대통령은 빈곤 추방 등 좌파정책을 추진하면서 주변국 좌파정권과 유착해 기득권 세력의 불만을 샀다. 게다가 '4년 단임' 족쇄를 푸는 개헌을 노리고 여론조사 명목의 국민투표 실시를 선언했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의회와 대법원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셀라야는 투표 지원을 거부한 참모총장 해임으로 맞섰다.

그러자 의회와 대법원은 그의 해임을 결정, 군부에 투표일 새벽 거사를 지시했다. 서구 언론은 "쿠데타 시대는 지났다. 바나나 공화국은 없다"고 지레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념 따위를 빌미로 헌법 테두리를 벗어난 권력싸움으로 지새는 나라는 여전히 바나나 공화국으로 불릴 것이다. 우리는 아닐까.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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