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대학 졸업 예정인 최모(24ㆍ여)씨는 휴학과 ‘0학점 등록’으로 학교에 적만 올려놓은 지난 1년 반 동안 인턴만 세 번째다. 취업이 안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잘하면 직원으로 채용될 수도 있고 최소한 이력서에 보탬은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 공공재단과 유명 화학회사에서 2개월씩 인턴을 하는 동안 한 일이라고는 자료정리와 잔심부름뿐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인턴은 않겠다고 결심도 해봤지만, 취업 문이 좀체 열리지 않아 최근 또다시 유통회사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이곳 역시 정규직 채용 가능성을 물어보면 “자리가 있으면…”이라는 답변뿐이다. 김씨는 “인턴만 하다 20대가 다 지나갈 것 같다”며 “50만~100만원 정도 받는 것 말고 백수와 다를 게 없다”고 푸념했다.
인턴이 끝나면 또 다른 인턴을 찾아 전전하는 ‘인턴 백수’들이 넘쳐 나고 있다. 2~3년 전만해도 인턴을 하면 직무도 배우고 채용으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인턴이 남발되면서 직무훈련은커녕 ‘알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싸구려 일자리’로 전락했다. 배우는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용돈 정도 버는 사실상의 백수인 셈이다.
본보가 취업포탈 인크루트와 공동으로 최근 2년간 인턴 경력이 있는 대졸자 1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이 같은 실상은 금세 확인됐다.
조사 대상자 중 현재 정규직으로 취업이 된 사람은 36명(27.3%)으로 10명 가운데 3명도 채 안됐다. 더구나 인턴을 했던 회사에 채용된 사람은 13명에 불과했다. 취업이 안돼 여전히 구직 중이라는 사람이 68명(51.5%)에 달했고, 12명(9.0%)은 다른 회사 인턴으로, 11명(8.3%)은 정규직을 포기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근무하고 있었다.
대졸 청년들이 인턴을 전전하며 청춘을 ‘허비’하고 있는 현실은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는 청년실업 해소를 명분으로 작년 말부터 행정인턴을 대거 뽑고, 기업에도 인턴 채용을 강제하다시피 했다.
인턴이 남발되면서 취업의 징검다리가 되기는커녕 잠시 떠도는 일자리로 전락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인건비가 지원되는 중소기업 인턴과 행정인턴은 올들어 5월말까지 3만5,000명(연말까지 7만1,000명 예정)이다.
또 600개 기업 대상 조사에서 공채 선발은 작년 2만1,961명에서 올해 1만3,830명(계획)으로 37% 준 반면, 인턴은 3,629명에서 1만3,472명으로 4배 가량 늘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늘어난 20대 일자리 가운데 거의 절반이 인턴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는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인턴 생활의 종착역은 결국 비정규직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올 2월 서울 모 대학 신방과를 졸업한 정모(23)씨는 그 동안 인턴만 인터넷 기업 등 4군데를 전전하다 결국 계약직 취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인턴을 전전한 것이 이력에 마이너스가 되고, 쏟아져 나오는 신규 졸업자와의 경쟁에서도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정씨는 “인턴을 하면 채용 가산점을 준다고 했지만 채용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인턴생활로 시간만 소모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턴을 몇 번 돌다 보면 결국 계약직 같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며 “정부가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기 보다는 한시적인 일자리만 양산하며 청년실업 문제를 덮으려 하다 보니 문제가 안으로 곪고 있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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