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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르고 보는 공기업, 근로자 껴안는 영세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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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르고 보는 공기업, 근로자 껴안는 영세기업

입력
2009.07.0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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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 제한' 규정 시행을 보름 앞둔 지난달 15일.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경북 경주의 D산업은 노사가 굳게 손을 잡고 감격의 포옹을 했다. 노사는 일주일 간의 대립 끝에 이날 29명의 비정규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자동차 트랜스미션 베어링을 생산하는 D산업은 직원 65명에 지난해 매출액 55억원을 올린 소규모 업체다. 이 곳 역시 다른 중소업체와 마찬가지로 직원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29명이 파견업체 소속의 외부 인력이었다. 같은 공장에서 정규 직원들과 똑 같은 일을 하지만, 신분은 불안정한 비정규직이었다. 특히 이중 24명은 D산업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해 7월이 다가오면서 비정규직법 시행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감과 회사가 파견업체를 바꿀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차하며 공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재된 불씨는 일찍 터졌다. 파견업체가 지난달 11일 갑작스레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 신고를 하는 바람에 소속사를 잃은 29명은 즉각 D산업에 고용 승계와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회사측은 당장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경기침체로 위기를 겪다 4월부터 주문량이 살아나고 있지만, 이들을 한꺼번에 정식 채용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더욱이 고용 승계의 법적 책임이 없어 이들을 모른 체 하고 다른 파견업체 직원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된 것은 다름아닌 '일감'이었다. 사측으로선 주문 물량을 한시라도 빨리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숙련된 근로자들을 교체하기가 쉽지 않았다. 직원들도 사측과 싸우면서 '라인'을 멈추면 공멸한다고 판단, 일요일까지 출근하며 주문량을 소화했다. 이를 통해 신뢰가 다져진 양측은 지난달 15일 고용 승계와 정규직화에 전격 합의했다.

박일룡(55) 노조위원장은 "하마터면 정규직 전환은커녕 직장까지 잃을 뻔 했는데, 오히려 화가 복이 됐다"며 웃었다. D산업 김모(50) 이사도 "단기적으로 부담이 되겠지만 숙련된 근로자를 잃는다면 결국 손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근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 대형 공기업들이 앞장 서서 비정규직을 무더기 해고하는 것과 달리,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 있는 중소기업이 '의미있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D사외에도 경기 군포시의 부품업체 K사도 최근 식당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6명을 정규직화 했고, 외국계 화장품 업체인 S사도 직원 16명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였다. 대구의 D금속도 1일 사내 식당 종업원 5명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법이 정치쟁점화하는 바람에 자칫 정부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을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정규직 전환을 한 중소기업체 임원은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비슷한 사정의 주변 기업들 눈치도 봐야 하고 노동부로부터 '실사 조사' 등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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