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강화론과 친서민 행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 정당으로서 자신들이 추구하던 가치와 정책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조바심 탓일 것이다. 위장서민 공세나 이 대통령이 방문한 떡볶이 집 망한다는 말을 했네 안 했네 하는 공방도 그런 반응의 산물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꼭 그렇게 조바심을 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민주당 주장대로 이 대통령이 앞으론 친서민 하고 뒤로는 반서민 한다면 얼마 안 가 밑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조만간 서민생활 향상을 위한 근원적 처방을 내놓지 못한다면 잠시의 친서민 행보는 몇 배의 분노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갑작스럽게 중도 강화와 친서민 행보를 들고 나온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이 대통령은 지금 큰 리스크를 스스로 떠안은 셈이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국면이라면 비교적 쉽게 서민 친화적인 정책을 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이너스 성장에 양극화 추세가 극에 달한 시기다.
시험대에 선 중도 강화ㆍ친서민
더구나 보수 정권의 정체성을 갖고서 친서민정책 수단을 구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4대강 살리기 토건사업 발을 기대할 만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요즘 잠을 설친다면 단지 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중도 강화도 그렇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 이미지를 중점 세일즈했고, 중도 부동층의 표 쏠림에 힘 입어 500만 표차 낙승을 거뒀다. 그러나 집권 후 지나친 전 정권 차별화와 강부자ㆍ고소영 내각으로 상징되는 인사 실패, 몇 번의 정책 헛발질 등이 겹치면서 중도기반을 하루아침에 상실해버렸다. 중도의 지지기반은 연약지반이다. 쉽게 꺼지고 패인다. 어설픈 중도는 좌우 협공에도 취약하다. 벌써 이 대통령의 중도 강화론은 좌우에서 매운 공격을 받고 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 등의 설명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보수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진보와 중도보수를 아우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잘만 하면 샌드위치 신세가 아니라 도랑에 든 소처럼 왼쪽 오른쪽 둔덕의 풀을 번갈아 뜯어먹을 수 있다. 다수 국민의 이익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좌우 상표를 가리지 않고 정책이나 방법론을 가져다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샌드위치 신세가 될지, 도랑에 든 소 같은 위치에 설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이 대통령의 진정성과 정치력 및 정책역량에 달려 있다.
특히 진정성은 흔들리기 쉬운 중도부동층의 관심과 지지를 붙잡기 위해서나 진보-보수 양측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중도 노선을 지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다. 안타깝게도 진정성은 이 대통령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여당 화합을 위한 박근혜 끌어안기나 대북정책 등 각종 대내외 정책 실패가 진정성 부족 탓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중도 강화나 친서민정책은 진정성 없이는 아예 성립이 안 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이 처음부터 진정성 없이 이런 노선을 들고 나왔을 리 없다
문제는 눈치 없는 정부기관들이다. 국정원은 희망제작소와 같은 비영리 시민단체들이 정부 부처나 기업들과 함께 벌이는 사업에 개입해 무산시키고 있다는 원성을 사고 있다.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는 "이 정부에 배제의 정치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면서 국정원의 작용을 직접 겨냥했다. 국정원 측은 극구 부인하지만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만만치 않다.
권력기관 과잉행동부터 고쳐야
정치성이 옅은 단체의 생활진보 캠페인 사업까지 못하게 하면서 소통과 포용이 핵심인 중도 강화를 말한다는 것은 우습다. 국정원은 물론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의 권력기관들이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법과 원칙'에 기대서 지난 10년 동안 눌러 참았던 권력 줄서기와 억압의 본능을 드러내는 한 이 대통령의 중도 강화론과 친서민정책은 그 진정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지금 진정성을 인정 받으려면 그 뿌리를 흔드는 권력기관들의 과잉행동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한반도 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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