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알바가 생겼다. '결혼식 하객 도우미'다. 이건 내가 아주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장소는 서울 강남, 토요일 1시 반에 집합인데 친구도 몇 명 데리고 오면 더 좋단다. 말 전하는 도우미회사 직원에게 묻는다 "일당이 얼마요?" 1만5,000원에 7만원짜리 점심도 대접한단다. 역할은 신랑 아버지의 친구다.
강남에서 제법 이름 알려진 예식장이니 식장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 도우미 회사에 돈 내고 밥 먹이자면 나 같은 짝퉁 하객 한 명당 돈 10만 원씩은 들어갈 테니 몇 십명 동원하면 수백만원이 족히 사라질 판이다. 신랑 아버지는 얼마나 친구 없이 살았으면 하객을 동원할 정도로 딱하단 말인가.
날씨는 비가 와서 구질구질하다. 쥐색 정장에다 사선 무늬 넥타이를 하고 나섰다. 약속 장소는 지하철 역삼역. 60살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 20여명이 양복을 빼 입고 모여 있다. 척 봐도 나 같은 짝퉁 하객인 걸 알겠다. 도우미 회사 직원은 인원 점검을 한 뒤 축의금으로 낼 돈 봉투 2개씩을 나눠준다. 그러면서 방명록에 추가로 두 사람 이름을 더 적으란다.
"뭐 땜에 더 적는답니까?" "방명록에 사람이름이 많을수록 좋답니다." 직원의 말은 아리송하고 수상하다. 오지도 않은 숫자를 늘려서 신랑 측에 삥땅을 칠 것 같은 느낌이다. 직원은 오늘 동원인력이 100명이라고 말한다. 미리 모였던 인원은 20여명 밖에 안 됐는데 나머지 80명은? 결혼식은 2시 반에 시작됐다. 신랑은 잘 났고 색시는 곱다. 신랑 아버지도 풍채 좋고 돈도 있어 보이다. 부인도 참하다. 그런데도 짝퉁 하객 100명에 1,000만원을 쓰면서 신부 측에 과시할 일이 무엇인지.
먼저 번에 갔던 결혼식에선 신부 측 친척 노릇을 했다. 강원도에서 서울에 와 홀로 일어선 신부 집에겐 서울까지 올 하객이 없었던가 보다. 우리 짝퉁 하객 10여 명은 가족사진까지 함께 찍었다. 나중에 친척 사진을 보면서 그 젊은 신부는 만날 수 없는 삼촌이나 육촌 언니라고 하겠지.
내가 앉은 자리는 아줌마 세상이었다. 남자라곤 나와 내 친구뿐. 눈치를 보니 짝퉁 하객은 아니고 신부 어머니 친구들이었다. 결혼식은 축하를 받는 자리다. 마땅히 축하를 하는 하객들만 모여야 한다. 남 보란 듯이 사람을 모으려면 차라리 서울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국수 한 사발씩을 먹여 주는 게 낫다.
사람 사는 게 처지가 물론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 역시 때가 되면 아들 딸이 시집 장가가네 할 것이다. 그때 나는 친척에다 진짜로 축하해줄 하객 10명 안팎만 돼도 반가울 것 같다. 결혼식은 으레 그렇듯 밥만 먹으면 판이 거둬진다. "신랑 아버지, 밥 잘 먹고 갑니다. 애 쓰셨으니 아들 며느리 행복하게 지내라고 빕니다. 오늘 날씨가 궂다고 서운해 마세요. 인생사도 이렇게 비 오다 개는 거지요."
내게 4번이나 다른 이름을 쓰게 하던 도우미 회사 직원은 1만5,000원을 준다. 나머지 세 명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삥땅을 치는가 싶다. 결혼식에는 진정으로 축복하는 사람들만 청해야 한다. 하기야 이렇게 부질없는 허세에 헛돈을 쓰더라도 행복하기만 하다면야 무슨 말을 할까.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황종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