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배우 한상진(32)은 돌연 미국행을 택한다.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 '카이스트'(1999), '발리에서 생긴 일'(2004), '백만장자와 결혼하기'(2006) 등에 출연할 때까지 그를 배우 한상진으로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가 서른으로 접어들 무렵, 그는 지쳐버렸다.
그렇게 부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짐을 푼 지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무렵, 돌연 드라마 '하얀 거탑'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다.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온 한상진은 오디션을 보고 주인공 장준혁의 오른팔인 의국장 박건하 역을 따낸다.
비록 조연이었지만 박건하로 강한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한 그는 사극 '이산'의 야심만만한 모사가 홍국영 역으로 자신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린다. 그리고 지금은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셋째 아들로 사회부 기자인 송선풍 역으로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고 있다.
'솔약국집 아들들'의 세트장이 있는 KBS 별관 로비에서 2일 만난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드라마 촬영 중이라 옷이 깔끔하지 않아 사진은 따로 보내주겠다던 매니저의 말에 후줄근한 사회부 기자 차림으로 올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극중 송선풍이 미녀 탤런트와 결혼을 하면서 패션감각이 점점 나아진 덕인 듯했다.
화면보다 나은 그의 실물을 칭찬하고, 몸 이야기부터 꺼냈다. 극중 빨랫감을 내놓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네 명의 아들이 팬티만 입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거기에 나온 송선풍의 몸은 첫째 아들로 나오는 손현주보다 못나 보일 정도로 좋지 않았다. 상체 노출 장면 때문에 다른 형제들과 비교되거나 신경쓰이지는 않았을까?
"저나 다른 형제들이나 오십보 백보예요. 누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급들이 아니에요.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선풍이가 목욕탕 갔을 때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나 형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촬영 초반에 체중을 10㎏이나 불렸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살이 다시 약간 빠졌는데 원래는 그 정도로 볼품없진 않았어요."(웃음)
밤에 억지로 라면을 먹고 잘 정도로 고생하며 연기한 선풍 역은 원래 한상진에게 제의가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드라마 시놉시스를 읽은 한상진은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아날로그 사랑을 하는 순진남 선풍의 매력에 끌렸고, 감독과 작가에게 이 역을 달라고 매달렸다.
다른 후보와 공개 오디션을 보겠다고 한 그는 오디션에서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선풍이보다 더 촌스러운 옷을 입고 연기를 했다. 그리고 선풍이가 됐다.
사랑을 처음 해보는 선풍을 연기하기 위해 '러브 액추얼리'의 휴 그랜트 등 영화 속 순진남들을 모델로 삼아 공부했다는 한상진. 어떻게 보면 사랑한다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답답한 남자인 선풍의 매력을 계속 칭찬하는 그에게 "선풍의 어디가 그렇게 멋있느냐"고 슬쩍 건드렸다.
그는 대뜸 "드라마 안보셨냐"며 선풍이 은지에게 고백할 때 했던 수줍지만 애정이 담뿍 담긴 대사를 '재연'해주면서 순진남 선풍의 매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는 그렇게 선풍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다.
냉혈한에서 순진남까지. 다음 작품에서는 한상진이 어떤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했다. 진한 멜로에서 '그저 바라보다가'의 구동백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고, 대원군같이 선이 굵은 역할도 하고 싶단다.
모든 남자 연기자의 로망인 구준표 역할도 탐난다며 웃는다. 어렵게 시청자가 찾는 배우로 자리잡은 한상진은 그렇게 의욕이 넘쳤다.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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