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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No"…청정광어가 퍼덕댄다/ '유기양식 기술' 개발한 경북 울진 민병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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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No"…청정광어가 퍼덕댄다/ '유기양식 기술' 개발한 경북 울진 민병서 박사

입력
2009.07.0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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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원남면 오산리 국립수산과학원 동해특성화연구센터 한쪽 구석엔 검은색 차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 형태의 양식장이 자리잡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유기양식(有機養殖)을 연구해 온 민병서(67ㆍ수산학 박사)씨의 무(無)항생제 시험 양식장이다. 고급 횟감인 광어와 강(江)도다리 3톤 가량이 매일 조금씩 무게를 늘리고 있다.

컴컴한 양식장 안에는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수조를 2단으로 올린 '순환여과식' 수조 3세트가 설치돼 있다. 물 깊이는 뜻밖에도 15㎝에 불과하다. 물이 얕다 보니 툭하면 퍼덕거리는 광어가 밖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그물을 씌웠다. 한쪽에서는 공기펌프로 산소를 공급하고, 반대편에는 '포말분리장치'가 바닷물을 끊임없이 정화하고 있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이상을 감지해 즉각 알려주는 센서와 경보기도 설치돼 있다. 외견상 보통 양식장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일반 양식장의 수조는 대부분 원형이고 물도 60㎝ 정도 깊이로 채운다. 일반 양식장에선 물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닷물을 계속 퍼 넣고 흘려 보내야 한다.

현재 시험양식장에서는 항생제는 물론 약이라고는 전혀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물고기가 병에 걸린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한다. 이유는 연안 바닷물보다 더 깨끗하게 양식수조 안의 수질을 유지하기 때문.

민 박사는 "4년 전부터 본격적인 시험양식을 해왔는데 한번도 병이 오지 않았다. 90년대 말 연구시작 초기에 어느 정도 효과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줄 몰랐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해 온 치어(稚魚) 생산업을 동업자에게 넘기고 무항생제 양식기술 개발에 매달린 결과다.

수질정화 원리는 황토보다 흡착성이 더 강력한 '벤토나이트'란 광물질을 넣어 병원성미생물을 포집하고, '포말분리장치'로 온갖 유해성분을 흡착한 벤토나이트와 물고기 배설물, 먹다 남은 사료 등을 걸러내는 것.

거품은 물의 표면장력 현상으로 발생하는데 표면에 찌꺼기가 쉽게 달라붙어 거품과 물을 분리하면 자연스레 찌꺼기도 걸러진다. 벤토나이트는 경주 특산의 화산재벤토나이트를 쓴다. 흡착성과 흡수성이 뛰어나 건축자재나 화장품, 제약 등에 널리 쓰이는 광물질이다.

민 박사는 "어떻게 보면 너무 간단하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10년 연구 끝에 성공시켰다"며 "양식 물고기에 병을 일으킨 병원성미생물을 제거하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니 자연히 병이 오지 않아 '무약제 양식'이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에 착수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당시 전반적인 수요감소와 장기간 양식에 따른 연안의 병원성미생물 토착화로 육상양식장에도 질병이 만연하던 때였다. 국내 양식업의 위기라고 할 정도였다. 16년간의 국립수산과학원(당시 국립수산진흥원) 연구관 생활을 마치고 89년 울진에서 광어 치어를 생산, 양식장에 공급하던 민 박사에게도 위기였다.

그는 "80년대 후반 본격화된 우리나라 광어양식이 10년이 넘어서면서 '어장 노후화'로 병이 많아져 양식업계가 존폐의 기로에 선 상황이었다"며 "일반 양식장이 살아야 치어를 생산하는 양식장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병 없는 양식이 가능할까' 고민하다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흡착제로 황토를 사용했다. 황토는 이미 70년대부터 일부 잉어양식장에서 쓸 정도로 질병 예방과 치료효과가 입증돼 있었다. 일부에서는 말라카이트그린 파동 때도 황토로 극복하기도 했다.

이후 전문가 조언에 따라 벤토나이트로 바꿨다. 그 실증효과는 2000년 한국양식학회지에 발표됐다. 시스템 개량을 거듭해 지난해는 세계양식학회에도 보고했고 2건의 특허도 등록했다.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수산업 신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시험장에 설치된 포말분리장치는 19번째 개량 모델이다.

민 박사는 "부경대가 2005년 조사한 광어 1㎏ 생산비가 8,500원인데 비해, 무약제 양식시스템은 7,700원으로 경제성도 뛰어나다"며 "폐사율이 평균 30% 이상인 일반 양식장과 달리 질병 피해가 없고 약값도 안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들어 민 박사의 기술은 상용화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경북도가 최근 실시한 '제1회 경북동해안 해양개발아이디어 공모전'에 육상에서 무항생제 순환여과식 사육시설을, 바다에서 파도에 강한 가두리양식장을 조성하는 '경북연안 무항생제어류양식벨트 조성안'을 제출해 대상을 거머쥐었다.

경북도는 무항생제 양식기술을 검증하고, 일반 양식장 보급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시범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민 박사는 이달 24일부터 내달 16일까지 열리는 울진친환경농업엑스포 국제학술대회에 관련 기술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 박사는 "친환경농업이 이젠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 것처럼 친환경양식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국내 양식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신규투자에 나설 여력이 없는 만큼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되고 친환경수산물 인증제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울진=글·사진 정광진 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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