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옛날부터 우리민족과 함께 살아왔다. 태어나서 금줄에 솔가지를 걸고, 소나무로 집을 짓고, 소나무로 불을 때고, 죽어서는 소나무로 만든 관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했다.
태백산맥 줄기인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의 산림지역에는 이런 소나무의 왕이라 불리는 금강송이 자라고 있다. 암석처럼 단단하다고 금강송(金剛松), 속이 노랗다고 황장목(黃腸木), 표피가 붉은 빛을 띤다고 적송(赤松), 매끈하게 잘 뻗었다고 미인송(美人松), 금강송 거래가 활발했던 지역 이름을 붙여서 춘양목(春陽木) 등. 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나무가 또 있을까.
최근 소나무 가로수 붐이 일면서 서울 도심에서도 소나무를 손쉽게 볼 수 있지만 경북 울진군, 봉화군, 영양군 일대의 국유림 지역에서는 금강송 생태복원사업이 한창이다. 그 중 소광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묘목에서부터 노송까지 완전한 생태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소나무 숲으로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소광리는 조선 숙종 때 황장봉계(黃腸封界)라는 표석을 설치해 벌목을 금할 만큼 예로부터 귀한 금강송의 산지로 인정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때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워낙 오지에 있어 개발과 벌목의 칼날을 피해 갈수 있었다.
1982년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된 뒤부터는 체계적인 보호ㆍ보존이 이뤄져 현재 2247ha 면적에 520년 된 보호수 2그루와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로 지정된 350년의 미인송, 200년이 넘은 노송 8만 그루 등 모두 1,284만 그루의 금강송이 서식하고 있다.
앞서 1969년에는 정부가 소광리에 화전민 정착촌을 마련해 주면서 금강송을 관리하도록 했다. 당시 10살 소년으로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 정착한 최수목(50)씨는 지금도 금강송 보존을 위해 간벌작업을 하며 험한 산야를 누비고 있다.
최씨는 "옛날 울진에서 서울까지 가는 과거길인 십이령길이 복원되면 우리 자식들이 부모들의 고생을 짐작하며 추억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말한다.
소나무와 함께 30년을 보낸 남부지방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이상을 경영조성계장은 금강송을 "전세계 환경자원 전쟁에서 살아남는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 계장은 자부심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한때 우리나라 산림의 65%를 소나무가 차지했지만 지구온난화, 솔잎흑파리, 재선충 등과 같은 병충해와 불법 벌채 등으로 지금은 25%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100년 뒤엔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금강송 군락지 관계자들의 소망은 한결같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소나무를 그저 나무 한그루가 아니라 보존해야 할 민족문화라는 생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진·글= 왕태석 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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