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치맛바람', 골프는 '바짓바람'이란 말이 있다.
국내 골프계에서 차지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본보 조사결과 한국여자프로골프선수들의 80% 이상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세리(32) 등이 대표적이며 그들은 세계 여자골프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뒤를 이어 20대 초반의 '박세리 키즈'들도 득세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쫓는 주니어 선수들도 늘어 나는 추세다. 1995년 기준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초ㆍ중ㆍ고 골프선수는 1,361명, 올해 등록 선수는 2,786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골프 아니면 우린 죽는다" 아버지의 정신교육
지난 27일 오후 경기 성남의 남서울 골프연습장.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 속에 대형 실외 선풍기 몇 대가 바람을 내뿜고 있는 가운데 주니어 골프선수 10여명이 연습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곁에서는 아버지들이 생업을 포기한 채 하루종일 함께 했다. 주니어 선수들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 두 명과 함께 골퍼 아빠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청주동중 3학년인 전종선의 아버지 전대호(60ㆍ이하 전)씨와 국가대표인 한정은(제주 중문산업고 2)의 아버지 한관승(44ㆍ이하 한)씨다. 전씨는 청주에서 골재사업을 하고 있고, 한씨는 제주에서 말을 키우며 식당을 운영 중이다.
- 골프를 어떻게 시키게 됐나.
전: 종선이는 처음에 인라인을 했지만 장래성을 감안해 초등학교 4학년 후반부터 골프로 전향시켰다. 초기에는 골프가 혼자 하는 운동이라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까지 왔으니 갈 데까지 가보는 수 밖에 없지 않나.
한: 내가 마라톤 선수 출신이어서 처음부터 운동 선수로 키우려고 했고 여섯 살 때부터 온갖 운동을 시키다 최종적으로 골프를 택했다.
- 어린 선수들이 혹사 당한다는 느낌은 없나.
전: 취미로 골프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유명한 선수가 목표이기 때문에 많은 훈련은 당연하다. 안쓰럽기보다는 당연하며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게 오히려 대견할 정도다.
한: 목적이 뚜렷한 만큼 겪어야 할 과정이다. 배수진을 쳐야 한다. 때로는 '이거(골프) 아니면 우리는 죽는다'라는 세뇌교육이 필요하다. 박세리의 담력을 키우기 위해 아버지가 밤 중에 공동묘지에 데려갔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애도 관광객이 많은 제주 민속촌의 돼지 우리 안에 넣어 담력을 키운 적도 있다. 선수는 배짱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평소 담력 운동이 필요하다.
- 부모 욕심에서 속상할 때도 많을 것 같은데.
전: 첫날 잘 치다가도 둘째 날부터 무너져 시합 끝나면 매번 속상하다. 좀 더 잘 할 수 있는데 소심하게 플레이 할 때가 너무 아쉽다.
한: 골프 때문에 딸과 함께 운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골프 신(神)'이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 돈이 많이 들 것 같은데?
전: 돈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한: 연간 최소 500만원에서 1억원까지 집안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중요한 것은 돈 보다는 선수의 열의가 중요하다. 돈으로 억지골프를 시킨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골프도 굳이 선수가 아닌 피아노 등 일반 교양 학원처럼 보편화 되는 것도 바람직하다.
- 주니어 선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전: 역시 인내심과 노력이다. 그리고 아직 어린 만큼 부모의 뜻에 순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한: 무턱대고 골프를 시킬게 아니라 기본 체력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체력만 키워 놓으면 샷은 쉽게 따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 애로 사항은?
전: 골프는 다른 종목과 달리 부모들이 항상 따라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학교수업 병행 등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목이다. 정부의 교육 정책과 골프장의 선수 지원, 육성 등 협조가 필요하다.
한: 스포츠, 특히 골프는 국위선양과 외화벌이의 효자 종목이다. 골프선수가 학업도 충실히 해야 한다는 발상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들의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시급하다.
글·사진=정동철 기자 ba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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