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38)씨는 지난 2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생활정보지를 뒤적이다 눈이 번쩍 띄는 광고를 발견했다. "1종 대형 면허만 갖고 있으면 특별한 운전 경력이 없어도 버스기사로 100% 취업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말 대형 면허를 땄지만 승용차만 몰아봤지 대형 차 운전 경력은 전혀 없어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터였다. 그는 바로 알선 업체를 찾아가 교습비와 취업 알선비로 180만원을 냈다. 무직 처지엔 엄청난 부담이었지만 '100% 취업'이란 말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다음날 오전 9시 약속 장소인 KTX 광명역 부근에는 김씨와 비슷한 처지의 초보 운전자 4명이 나와 있었다. 김씨 등은 이날 광명역 인근 한적한 도로에서 번갈아가며 1시간 가량 버스 운전 연수를 받았다.
물론 불법 교습이었다. 이렇게 닷새 동안 총 5시간의 연수를 받고 나자, 알선업체는 '화물차를 2년간 운전한 경력이 있다'는 가짜 운전경력 증명서를 만들어줬다. 김씨는 이 증명서로 업체에서 알선한 인천의 한 버스회사에 취업해 수 개월 간 버스를 운전해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김씨는 경찰에서 "대부분의 버스 회사들이 운전기사를 뽑을 때 최소 1년 이상의 대형 차 운전 경력을 요구하는데 초보 운전자들은 이런 경력을 쌓기가 쉽지 않다"면서 "불법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일 대형 차 초보 운전자들에게 허위 경력증명서를 만들어주고 버스회사에 불법 취업시킨 혐의(사문서 위조 등)로 박모(49)씨 등 알선 브로커 3명을 구속했다. 또 다른 알선 브로커 15명과 허위 경력으로 취업한 버스 기사 40명,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초보 운전자들을 취업 시킨 버스회사 직원 류모(47)씨 등 5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등 브로커들은 2005년 10월부터 생활정보지에 버스 운전기사 모집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초보 운전자 156명으로부터 1인당 교습비 40만~60만원, 취업알선비 명목으로 80만∼200만원씩 받고 불법 도로 연수를 해준 뒤 경인지역 버스회사 5곳에 취직 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특히 자체 모집한 회원들이 보다 쉽게 취직할 수 있도록 버스회사 채용 담당 직원에게 정기적으로 매년 수백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법상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되려면 1종 대형 면허를 취득하고 1년 이상의 운전 경력이 있어야 한다. 운전 경력에는 승용차 운전 등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의 버스 회사들은 안전 등을 고려해 버스를 비롯한 대형 차 운전 1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브로커를 통해 경력을 위조해 취업한 나머지 버스 기사 116명을 추가로 입건할 방침이다. 사이버수사대 박훈희 팀장은 "수십 명의 승객들을 싣고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불법 취업한 초보 운전자들이 운전하면 승객 안전이 크게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취업알선 브로커들과 버스 회사 채용 직원들간 유착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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