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라는 게 보이지 않는 데서 하는 일이잖아요. 권리를 찾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안 보이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게 권리이니까."
KBS 공채 성우 1기로, 전문직 여성 1세대로 꼽히는 고은정(73)씨는 "여권은 정신과 영혼처럼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개개인이 자신감 있게 주장을 펼칠 때 실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부는 제14회 여성주간(매년 7월 1~7일)을 맞아 여성사전시관(서울 대방동)에서 특별기획전 '여성과 노동'을 연다. '??? 일상 새로운 상상'을 주제로 12월 4일까지 계속되며, 활발한 사회 참여 뒤에 감춰진 여성 근로자들의 애로사항 극복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전문직 여성 1세대의 고충을 전하는 고씨의 영상 인터뷰도 이번 전시에 소개된다.
"방송은 남자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여성이라고 차별받을 일은 많지 않았죠. 하지만 무척 평등한 듯 보이는 여건 속에서도 의식은 그렇지 못했던 듯해요. 업무 외의 구실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1954년 숙명여대 1학년 재학 중 성우로 입문해 지금까지 방송 일을 놓지 않고 있는 그에게 성우는 그야말로 평생직업이다. 그는 1958년 라디오 드라마 '산 너머 바다 건너'에서 상하이 여자 '미라' 역으로 주목받은 것을 평생 한 길을 걷게 해준 원동력으로 꼽았다.
"데뷔 초 선배들이 쓰고 버린 대본을 주워 매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온갖 배역을 연습했어요. 책상 등도 하나 없던 시절이니 백열등을 들고 이불 속에 들어가야 했죠. 그렇게 해두니 어떤 역을 맡아도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던 걸요."
오랜 사회 생활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이나 멘토의 힘을 깨달았음은 물론이다. 1956년 '청실홍실'로 데뷔한 그는 주인공을 놓고 성우 동기 정은숙씨와 경쟁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성우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미묘한 관계의 문제를 설명했다.
"방송 1, 2회에 정은숙씨가 맡았던 주인공을 3회 때는 제가 맡았는데 그이는 무안해 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변함 없이 유지하더군요. 이후에 그 역은 다시 그이에게 돌아갔죠. 같은 또래인데도 위기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랐죠. 성우는 배역 문제로 얽히면 참 어색한 관계가 될 수 있거든요."
네 자녀를 둔 그는 일뿐 아니라 육아도 소홀히 하지 않은 덕분(?)에 "정신이 나간 사람"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쯤인데 한 프로듀서가 '고아무개는 스튜디오에서는 괜찮은데 평소에는 정신이 나간 사람 같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상처를 참 많이 받았죠.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정말 아파할 일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는 1950년 전쟁이 터지자 '통일을 위해 여자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자의용군 예술대에 자원 입대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양성 평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당장 대접을 못 받더라도 한 명 한 명이 길을 낼 때 언젠가 남녀가 완전히 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게 그가 후배 여성 직장인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이번 '여성과 노동' 전시에는 고씨 외에 전투기 조종사 김경오(75)씨의 회고 영상물도 상영되며, 일러스트와 텍스트로 구성한 '여성 노동 가이드', 여성작가 7인의 미술ㆍ영상ㆍ일러스트 등을 선보이는 '여성작가 참여전'도 함께 열린다. (02)824-3085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