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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남자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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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남자와 여자

입력
2009.07.0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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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늘 집을 떠나 있었다. 우리집은 늘 여자만 넷 있던 집이었다. 기르던 강아지도 하필 암컷이었다. 처녀 시절 호리호리하던 어머니의 몸집이 별안간 커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큰 덩치의 어머니 앞에서 웬만한 남자들도 절절 맸다. 어머니는 목소리도 컸다.

어머니 덕분에 덩치나 목소리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나도 수도꼭지의 고무 패킹이나 전기 퓨즈를 갈아 끼우고 웬만한 못질은 하는 여자애였다. 결혼해서 딸을 낳자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어이구, 여자가 하나 더 늘었네." 요새 뒤늦게 생긴 손자를 돌보느라 몸은 고달프지만 어머니는 신기한 일의 연속이라고 즐거워한다. "할머니 베개 좀 갖다줘"라는 말에 작은방에서 큰방까지 베개를 가지고 가는 둘째를 그대로 흉내낸다.

베개를 품속에 품고 걸어가던 우리나 큰애와는 달리 둘째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베개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고 한다. 며칠 전 둘째의 말을 알아듣고는 깜짝 놀랐다. 이제 말을 하나둘 배워가는 아이가 불분명한 발음으로 나를 안으며 말했다. "엄마,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한번도 네가 남자고 남자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가르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까. 이제 29개월. 벌써부터 누군가 그 작은 어깨에 '남자다움'이라는 짐을 얹은 듯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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