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냈을 때만 해도 동갑내기 축구 스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천수는 21세의 젊은 피로 전도유망한 한국축구의 기린아였다.
그러나 불과 7년이 지난 지금 둘의 축구인생이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박지성이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한국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며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반면 이천수는 가는 팀마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눈살 찌푸리게 하는 그라운드 안팎의 돌출행동으로 스포츠면을 장식하고 있다.
둘의 축구인생이 엇갈리게 된 것은 자기관리에 있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수도승 같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일그러진 발로 화제가 됐던 박지성은 "축구교도소에서 사는 것 같다"는 모 해설위원의 비유처럼 축구 이외의 사생활은 극도로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항상 주목 받기를 좋아하는 이천수는 잇단 돌출행동으로 '그라운드의 사고뭉치'로 전락했다. 포털에서 이천수를 검색하면 관련 단어로 '거짓말' '주먹감자''퇴출' '막장'이 뜨는 것을 보면 그가 자기 관리에 실패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출발은 이천수가 앞섰다. 이천수는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고교시절 최태욱 등과 함께 부평고 3인방으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다. 이에 반해 수원공고를 졸업한 박지성은 명지대를 거쳐 2000년 허정무 감독에게 발탁될 때까지는 평범한 선수였다.
한일월드컵 당시 비슷했던 둘의 위상은 이후 극명하게 갈린다. 이천수는 한일월드컵의 후광을 업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 축구인생의 클라이맥스를 맞았다. 하지만 적응 실패 및 팀 동료와의 불화 등으로 누만시아로 임대되더니 2005년 K리그로 돌아왔다.
이천수는 다시 2007년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로 이적했으나 수원으로 임대됐고, 수원에서도 코치진과의 불화 등으로 임의 탈퇴 선수로 쫓겨났다. 올시즌 박항서 감독의 읍소로 전남에 임대돼 백의종군하는 듯 했으나 또 다시 '그라운드내 주먹 감자'로 징계를 받더니 결국 신의를 저버리고 사우디아라비아 클럽팀 알 나스르로의 이적을 추진, 물의를 빚고 있다.
이천수의 축구인생이 레알 소시에다드, 페예노르트, 알 나스르로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면 박지성은 교토 퍼플상가, PSV에인트호벤을 거쳐 맨유에 입단하는 등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유럽무대에서 박지성이나 이천수 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박지성은 남들보다 더 뛰는 것은 기본이고 스타 플레이어들이 꺼려 하는 궂은 일도 마다 않는 '희생적인 플레이'로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가 됐다. 이천수는 어떤가.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데 한국에서의 자기 위상만 믿고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네 탓'이라는 처신으로 동료들과 융화되지 못했다.
팀을 옮길 때의 행동만 봐도 천양지차다. 박지성은 교토 퍼플상가와의 계약기간이 끝났음에도 일왕배 결승전에 출전, 팀에 우승컵을 안기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천수는 지난 달 28일 포항전에 뛰어 달라는 코칭스태프의 요청에 부상을 핑계로 거부하더니 팀을 무단이탈했다.
떠난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닌 듯하다. 이천수가 아전인수식 행보를 계속한다면 기량을 떠나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뛰고 싶다는 그의 희망은 단지 희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라나는 후배들은 이천수의 축구인생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동은 스포츠팀장 dey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