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즌 필(Poison Pill)' 법제화에 적극성을 띠어 온 법무부와 달리 그간 경제부처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온 터. 이번에 기획재정부가 나서 "포이즌 필 등 적대적 인수ㆍ합병(M&A)에 대한 방어수단의 법제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제도 도입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2003년 소버린의 SK 경영권 위협, 2005년 칼 아이칸의 KT&G 공격 등 외국인 기업 사냥꾼들의 잇단 적대적 M&A 시도에 대한 방어 수단을 마련해달라는 재계의 강력한 요구가 받아들여진 셈이다.
정부가 이번에 도입하겠다는 포이즌 필은 신주를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콜옵션'을 기존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 기업 사냥꾼들이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위협하는 경우, 회사측이 발행하는 신주를 기존 대주주가 저가에 인수하도록 함으로써 적대 세력의 지분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다.
이외에도 적대적 방법으로 기업이 매수되면 기존 경영진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주도록 하는 '황금 낙하산', 주식의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는 '차등 의결권', 합병 등 중요한 의사결정 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특별주를 허용하는 '황금주' 등 다른 형태의 적대적 M&A 방어 수단도 검토 대상이지만 현재로선 도입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구본진 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우리 실정에 맞는 단계적 도입 방안을 만들겠지만 연내 법제화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포이즌 필 도입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데는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내에 쌓아두고 있는 막대한 현금을 설비투자 등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있다.
한국은행은 한 보고서에서 "공장을 짓는데 들어가야 할 돈이 백기사 확보 등 적대적 M&A 대책 비용으로 쓰이고 있다"며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늘리려면 경영권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부작용 우려도 크다. 그동안 정부 일각에서 펴온 "외국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지 않겠느냐"는 논리는 이 제도를 미국, 일본 등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국내 재벌들의 경영권만 보호해주고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귀 기울여봐야 한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장은 "이른바 '경영권 시장'이 활성화돼야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고 경영진의 비효율적인 기업 운영을 막을 수 있다"며 "포이즌 필처럼 인위적으로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