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오후 11시께 충북 청원군 내수읍에 있는 청주공항에서 6인승 경비행기 한 대가 이륙했다. 국립기상연구소 정재원, 양하영 연구원을 태운 비행기는 1시간 30여분을 날아 강원 태백시 광동댐 남서쪽 10㎞ 지점 상공에 도착했다.
기상 모니터를 살피던 정 연구원이 "점화!"를 외쳤다. 순간 비행기 양 날개에서 불꽃이 튀면서 입자 상태의 요오드화은(AgI)이 뿜어져 나왔다. 비행기는 지상 3㎞ 상공에서 북서와 남동 방향을 4번 왕복하면서 600g의 요오드화은을 공기 중에 살포했다. 요오드화은은 구름과 뒤섞여 20여분 후 목표 지점인 광동댐에 0.5㎜의 비를 뿌렸다.
국내 첫 인공비가 내린 순간이었다. 국립기상연구소는 지난해부터 8회의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했는데, 인공 눈이 아닌 비가 내린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양 연구원은 실험 전과 후 레이더 시그널의 변화 등을 항공기내에 설치된 기계장치를 분주히 살피며 지상의 연구센터에 무전으로 결과를 보고했다. 양 연구원은 성공을 예감하고 마음속 환호를 질렀다.
국립기상연구소 연구팀이 지난해 3월 강원 대관령에서 인공 눈을 처음 만든 데 이어, 올해는 인공 비까지 만들며 인공강우 실험 재현에 성공했다. 과학적 재현성이 확보됨에 따라 비로소 인공강우 실험 성공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기상청이 지난해 실험 결과 발표를 그간 미뤘던 것도 과학적 재현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올해는 지형 제약을 벗어나 평지 상공에서 비를 뿌리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평지가 많은 호남 등 국내 전역에서 인공강우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공 강우의 원리는 구름에 비의 '씨앗' 역할을 하는 요오드화은이나 드라이아이스, 액체질소 등을 뿌려주는 것. 구름 속 수분이 이 씨앗에 폭발적으로 달라붙으면서 빗방울로 떨어지게 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분을 머금은 구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인공강우 실험이 대부분 강원 대관령에서 실시됐던 것도 이 지역의 구름이 수분이 풍부한데다 물방울 입자까지 많기 때문이다. 북동풍이 산맥을 넘으면서 공기가 팽창해 구름 속에 물방울 입자가 늘어난 것이다. 연구팀이 인공 비 대신 인공 눈을 먼저 만들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기온이 낮은 대관령에서 실험을 실시했던 사정이 한몫 했다.
연구팀은 올해 실험지로 평지인 태백시 광동댐 상공을 택했다. 이 지역의 구름은 남서풍에 속해 수분이 많지만 물방울 입자는 적다. 연구팀은 3월 22일 광동댐에서 실시한 첫 실험은 실패했지만, 같은 달 30일 두번째 실험에서 마침내 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구팀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여전히 산적해 기술 상용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열악한 실험 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연구팀을 이끈 장기호 박사가 이번 실험에 임대해 사용한 경비행기는 산소공급장치가 없어 지상에서 3㎞ 정도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이 때문에 실험은 봄철까지만 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구름이 지상 5~8㎞ 높이에서 형성돼 경비행기로는 구름에 접근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인공강우 실험을 하는 나라는 40여개국 정도. 미국은 50년 전부터, 러시아는 30년 전부터 기술을 개발해왔다. 중국은 기상조절을 위한 전용항공기 34대, 로켓발사대 4,600여문과 3만5,000여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장기호 박사는 "연구환경이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실험에 쓸 수 있는 중형 비행기와 연구 환경만 개선된다면, 빠른 시간 내에 기술을 상용화해서 한반도에 물 부족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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