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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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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벼락

입력
2009.07.0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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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천둥ㆍ번개에 새벽잠을 설쳤다. 활짝 열었던 창을 다 닫아도 번쩍거리는 번개 빛이 방안 깊숙이 어리어 들고, 밤공기를 날카롭게 찢은 천둥소리가 우렁우렁 방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자연의 힘에 잠시 두려움과 경이를 느꼈다. 어릴 적 방문을 열고 장대비 쏟아지는 들판을 내다보면, 땅과 하늘이 닿은 듯한 어둑한 공간을 지그재그로 가른 벼락이 강 언덕의 나무에 내리 꽂혔다. 비가 갠 후 달려가 보면 어떤 나무는 누가 억지로 잡아뜯은 듯 거칠게 잘려 쓰러져 있고, 더러는 껍질이 훌렁 벗겨져 나가거나 한쪽이 터져 나간 모습이었다.

■그래도 벽조목(霹棗木), 즉 '벼락맞은 대추나무'는 보지 못했다. 벼락을 부를 정도로 키가 우뚝하거나 언덕 위에 높이 선 대추나무가 동네에는 없었다. 몸에 지니면 귀신을 쫓고 행운을 부를 수 있어 도장재료로 인기라는 말만 자주 들었다. 전통적 음양사상을 더듬게 하는 얘기다. 열매의 붉은 색에서 유추되듯, 대추나무는 예로부터 양의 기운이 강한 존재로 여겨졌다. 여기에 극양(極陽)의 상징인 벼락까지 더했으니 음기와 친한 귀신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대적이었을 것이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아 '순간 건조'까지 거쳤다는 실용적 판단도 한몫을 했을 법하다.

■벼락은 땅으로 떨어지는 번개다. 적란운을 비롯한 '번개구름' 상층부는 양전하, 하층부는 음전하를 띠는데 그 전위차가 일정 수준을 넘을 때의 급격한 방전이 번개다. 방전은 주로 구름 사이에서 이뤄지지만 구름과 땅 사이에도 일어나 벼락이 친다. 벼락은 방전량이 수십~수백㎄, 전압이 100~1,000㎹에 이른다. 전력으로 환산해 평균 약 90만㎿가 1,000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에 땅속으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2만7,000도에 이르는 열을 내뿜고, 그에 따른 주변공기의 급속한 팽창이 음속을 돌파할 때의 충격파가 천둥소리를 낸다.

■이런 엄청난 힘의 벼락을 인간이 직접 견뎌 낼 방법은 없다. 미리 공중방전을 유도해 지상과 상공의 전위차를 줄여주는 피뢰침이 있긴 하지만, 보호범위가 한정돼 있다. 다만 벼락 맞을 확률을 최대한 줄이는 지혜는 많이 알려져 있고, 그에 따르려는 개개인의 노력은 보상을 받아 왔다. 벼락을 피하기 위한 이런저런 행동지침의 핵심은 '되도록 자신의 높이를 주위보다 낮추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꼭 벼락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지혜로 삼아도 좋을 만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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