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터뷰/ '원조보수' 김용갑 한나라당 상임고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터뷰/ '원조보수' 김용갑 한나라당 상임고문

입력
2009.07.03 00:47
0 0

김용갑(73) 한나라당 상임고문은 자타공인 한국 사회 보수정치의 상징이다. 점잖은 자리에서는 '원조보수'로 불리고, 등 뒤에서는 훨씬 험한 수사도 따라붙기 일쑤다.

예컨대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개정을 요구하는 민주당을 두고 '조선노동당 2중대'(2000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라고 몰아붙이거나 최근 개성공단 사태 와중에 북한을 엿장수로 남한을 '엿'으로 표현할 때의 그는 살벌한 '이념적 언터처블'이다.

2008년 3선을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는 "그토록 원하던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이제는 할 일이 끝났다. 응원이나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들려오는 그의 '응원가'는 자못 이채롭다. 초점과 지향은 물론 다르지만, 정부 비판에 동원한 그의 어구들은- 소통의 부재, 부자 정부, 민심 이반, 권위주의- 촛불 광장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부를 몰아세우는 그의 기세는 오히려 더 매섭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론'에 대해 속았다고 했는데.

"좌파정권 10년의 문제들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었다. 당은 믿었고, 그래서 국민도 표를 준 거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덜렁 내놓은 내각이 어땠나. '부자면 어떠냐'는 식이었다. 국민 기대를 저버린다 싶었고, 좌파의 공세도 우려됐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붙이는 걸 봐선 뭔가 있겠지…, 했는데 그것도 아니야. 수준이 흔들려. 소고기 파동 와중에 청와대 뒷산에 가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여야 하는데 그렇게 감상적이어서야…. 결국 재보선 참패, 한 마디로 정치를 못 하는 것 같아.

부자 감세니 뭐니 하면서 생활정치 실패하더니 궁지에 몰리니까 근원처방 한답시고 들고나온 게 이념문제야. 보수가 뭐 대단한 걸 지키려는 게 아니야. 헌법이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 가치에 기반한 통일 아닌가. 그걸 지키자는 게 보수다. 우파 정당의 힘을 키우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싸웠는데, 그 힘으로 대통령된 사람이 중도? 그건 좌로 가겠다는 말이잖아. 보수가 속은 거지.

-생활정치의 실패를 만회해보자고 중도도 말하고 서민정치도 말하는 것일 텐데.

"이념 건드리지 않고도 생활정치ㆍ서민정책 얼마든 가능해. 5공때 정치적 불만이야 얼마간 있었겠지만 경제적 중산층은 여느 정권 때보다 두터웠어. IMF 거치면서 몰락한 거지. 사회안전망이라는 것도 5공 작품이야. 이념을 건드려서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민정책과는 무관한 얘기지.

보수정당이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건드리면서, 마치 보수가 잘못된 것인 양 말하는 건 불쾌해. 사실 이 대통령이 경선 과정이나 후보시절에 스스로 자신을 '진보다' '한 때 운동권이었다'는 말은 몇 번 했지만, 보수라고 한 적은 없어.

난 기억이 안 나. 보수와 진보가 정책적인 면에서 다른 거 별로 없어. 다만 대북문제나 체제문제에서는 확연히 다르지. 적화통일 의도를 품고 핵 만들고 미사일 만드는 정권이 이북에 엄존하고 있는데, 북한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좌파가 국내에도 엄연한데, 이념을 초월해 중도를 한다?

-중도선언, 그냥 레토릭으로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정체성을 건드리는 건 옳지 않아. 보수의 개혁이 더 감동적인 거다. 기득권의 틀을 깨고 약자를 보호하는 일 아닌가.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보수가 다 부자는 아니다. 어려운 사람 많아. 거리에서 보수 깃발 들고 싸우는 사람 다 부자냐? 서민 중의 서민들이다. 보수=부자 이미지도 이 정부가 만들어 놓은 거야. 가난한 보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보수의 진정성은 파당의 이익, 자신의 이해를 초월한 직언일 때 돋보인다. 아무래도 '친박'이어서 쓴 소리도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지. 그런데 그래서 내가 박에게서 뭘 얻는데? 박이 대통령 되면 불러줄까? 불러줘도 안 간다. 좌파 10년 거치면서 정통 보수정당의 정체성과 국가안보 지키는 데 역할 했고, 난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대통령은 흔들려. 부자들 세금 줄여주고 각종 규제 풀고 온통 보수 경제정책으로 밀어붙여서 부자정권 이미지 만들어놓고는 이제 180도로 돌아서서 서민정책? 원칙에 강한 사람이 리더가 돼서 이 나라의 중심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박 같은 사람…, 그래서 지지했고, 지금도 지지한다."

-박에게는 원칙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큰 정치를 해달라고 당부한다던데.

"만날 때마다 그런 얘기 하지. '좀 유연하게 하시라.' 차기에 대한 큰 구도 속에서 생각하다 보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거다. 당장 '당 쇄신위'가 현안일 텐데, 정치 해보면 그런 거 툭하면 하는 거니까 크게 구애될 일은 아니다. 할말 하라고 주문들을 하지만 박은 '내가 그렇게 해버리면 대통령 생각과 다를 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 말 안 하는 게 돕는 거라는 얘기다. 수긍할 수 있다."

-여권에서 박근혜 총리론도 거론하던데.

"알멩이 없는 소리다. 한두 번 꺼낸 정치적 수사냐. 늘 실체 없이 흐지부지…. 정식으로 대통령이 얘길 꺼내야지. 진지하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장난치는 거지."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다. 육사 막강 17기지만 동기생 중 유일한 수송 병과여서 '하나회'는 존재조차 몰랐다고 한다. 수송을 택한 건 미국 고등군사반 유학을 가고싶어서, 보병보다 경쟁이 덜할 것 같아서 였다. 하지만 군사원조 삭감으로 수혜자가 줄어 유학 계획은 무산된다. 그래서 소령으로 예편하고, 옮긴 자리가 중앙정보부 수송과장이다.

"거긴 정보가 보병이잖아." 그래서 정보로 전과해 기조실 기획과, 인사과, 감찰실 등 거의 모든 부서ㆍ직급을 거친다. 전두환 전대통령과는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중위시절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 땐 소령이었지. 첫 인상이 좋았던지 훗날에도 내 이름을 기억하더라."

더 훗날 전전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부임해서 국방대학원에 있던 그를 찾는다. 그는 그 인연으로 중정 기조실장을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86년 1월~88.6)을, 노태우정부 초대 총무처장관을 지냈고, 15~17대 국회의원을 했다.

동시에 그는 몇몇 고비때 살아있는 권력과 '우호적 대립'의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직언의 정치인'이라는 귀한 이미지도 챙겼다. 87년 6월 대통령과 1시간 동안 독대하며 대선 후보의 호헌(護憲) 입장을 거스르며 '직선제 수용'을 간했고, 구소련에 의한 KAL기 추락참사 사건보다 먼저 대통령의 새마을 청소가 보도되던 시절 '땡전뉴스'의 폐해를 지적했다.

당시 그가 전화를 하면 전경환씨 등 대통령 친인척도 불편해 했고, 육사 동기생인 안현태 경호실장도 '가급적 아침 보고는 피해달라. 각하가 하루 종일 신경 쓰여서 집무를 제대로 못 보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총무처장관 사퇴도 인상적인 일로 거론된다.

"88,89년 대학가와 사회 좌경화가 심했지. 근데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거야. 우익 결집의 경종을 울리기 위해 사표를 냈지." 그런 뒤 우익단체를 만들어 바깥에서 정부를 '옹위'하고자 하다가 3당 합당이후 활동을 접고 국회로 눈을 돌린다. "수구꼴통 소리도 들었고, 더 심한 말도 들었지. 처음엔 불쾌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진보라고 다 친북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과는 명확히 선을 긋는 진보가 훨씬 많다. 북한문제를 지나치게 대결적 논리로 밀어붙이는 걸 불편해 하는 보수도 있다.

"지금 한나라당 봐라. 청와대에서 중도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비판하는 사람이 없다. 욕 먹을 각오하고 내가 나서니까 그나마 힘을 보태고 따라오는 이들도 있고, 보수의 기(氣)도 사는 거다. 내 표현이 강한 건 인정한다. 내 마음이 60~70%일 때도 표현은 100%를 하게 된다. 그래야 먹히니까. 사적으로는 운동권 출신 386 정치인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북한 도와주자? 너무 나이브해. 모르고 하는 위험한 소리지. 핵 비대칭 상황 아니냐. 핵우산? 그거 믿고 안심하는 국민이 몇 프로나 되나? 그런데 제2롯데월드 허가?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경제논리가 안보논리를 덮는다는 게 말이 되나.

-'직언의 용기' '총대 메기'를 고도의 정치적 계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령, 총무처장관 사퇴도 총선을 의식한 수순이었다는….

"뭔 소리를 해도 상관없다. 득 본 거 없다. 장관 사퇴 직후 안기부 박세직 씨로부터 영등포 출마 제의를 받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 대신 나웅배 씨가 나서서 김민석 누르고 당선됐다. 96년(14대) 서초 출마때 무소속으로 나가서 졌고, 15대에도 무소속으로 고향에서 당선했다.

16대땐 아내도 아프고 해서 그만둘 생각으로 당시 이회창 총재에게 후배를 추천했지만 결국 나설 사람이 없어 내가 했고, 17대때는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등 젊은 의원들이 ' 5ㆍ6공 인사 용퇴론'을 들고 나와 거기에 저항하기 위해 나섰다. 그냥 물러나거나 그들의 힘에 내가 밀리면 당의 정체성을 위해 노력했던 바를 스스로 부인하거나 부정당하는 게 되니까."

-앞으론 어쩌실 참인지.

"다시 정치는 안 한다. 당 상임고문이니까 욕을 먹더라도 쓴소리 하면서 도와야지. 이 정부가 성공해야 다음에도 보수가 이긴다. 실패하면 박근혜 아니라 누구라도 안 될 수 있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큰일나지."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