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을 하루 앞둔 30일에도 정치권과 노동계의 줄다리기로 비정규직법 처리 방향이 가닥을 잡지 못하자, 이 법에 운명이 걸린 비정규직들은 무능한 정치권과 책임지지 않는 노동계에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7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이미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해고'라는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기댈 곳 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금융회사에서 3년 넘게 채권추심업무를 해온 김모(39)씨는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1일부터 실업자가 된다"면서 "2년 전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될 때는 정규직 전환을 꿈꿨는데 내 앞에 닥친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7월 1일자로 김씨를 포함해 19명의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이들이 맡았던 업무를 파견업체에 위탁하기로 했다.
인천에서 비정규직으로 배달업에 종사하는 박모(29)씨는 "여당은 해고 대란, 야당은 정규직 전환 등 서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며 "이제 말싸움을 그만하고 결론을 내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재계약과 해고가 결정된다"며 "내 운명을 정치권에 맡긴 게 한스럽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다 지난달 해고된 김성미(27ㆍ여)씨는 "비정규직과 관련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이미 다 아는데, 정치인들은 이제 와서 (법 시행) 유예와 관한 얘기만 하고 있다"면서 "고용주는 (비정규직이)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일한 대가보다 낮은 임금을 주고자 해고를 하는 현실을 정치권은 제발 알아달라"고 하소연했다.
7월1일부터 현행 법 시행이 확실해지면서, 사업주들도 그에 따른 시나리오를 행동에 옮기고 있다. 법 시행이 유예될 경우 재고용 의사를 밝혔던 사업주들은 속속 해고 준비에 들어갔다. 서울 강남의 한 투자회사 관계자는 "70여명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데, 1일에만 10명을 해고하고 10월까지 나머지 인원도 전부 교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비정규직으로 교체하는 한편 고용인원도 50명으로 줄일 계획"이라며 "노동계가 현실성 없이 정규직 전환만 요구하는 것은 횡포"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노동청의 한 근로감독관은 "대다수 업체들이 막판까지 여야의 의견 조율을 기대하다가 유예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계약해지 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같은 직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회사만 옮기는 대규모 순환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대혁 기자 권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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