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금남의 집'에 첫 발을 내딛자 묘한 공기가 코 끝을 자극했다. 행거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유니폼에서 땀냄새가 피어 오르는 듯 했지만 이내 집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거운 '여인의 향기' 탓에 이는 금세 증발했다. 여기 저기 축구용품들의 흔적이 보였지만 축구단의 합숙소라고 하기에는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지난 25일 93년 창단한 최초의 여자축구 실업팀이자 현재 WK리그 1위(6승3무1패, 승점 21)를 달리고 있는 현대제철의 숙소를 찾았다. 현대제철은 인천 계양구 효성동 현대 4차 아파트 53평형 3개 동을 임대해 재활트레이너를 포함해 24명의 여자 선수들이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푸근한 보금자리에서 새나오는 '그들의 수다'를 들어봤다.
■ 가정식, 치료기, 운동기구 없는 게 없다
선수들에게 '제2의 집'인 숙소에는 생활과 재활에 필요한 모든 장비들이 구비돼 있었다. 하성희 재활트레이너가 함께 묵고 있는 203호에는 재활 치료도구와 운동기구, 세탁기, 대형냉장고(각종 보약이 가득) 등 없는 게 없었다. 선수들은 틈만 나면 적외선 치료기와 전기 치료기 등 재활장비들과 의약품이 가득한 203호로 모여든다.
부상자들은 치료기를 통해 정기적으로 재활을 하고 일반 선수들도 근육 이완과 통증 완화를 위해 이를 적극 활용한다. 수면시간 외 에 운동기구를 이용해 개인운동을 하는 모습도 숙소의 풍경이다. 선수들은 숙소 내 '소형 헬스장'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개인운동을 '알아서 척척'하며 시간을 보낸다.
현대제철은 정성이 듬뿍 담긴 '가정식'이 자랑이다. 베테랑 주부인 이선옥(44)과 최인경(47)씨는 벌써 3년째 현대제철 선수단을 위한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선옥씨는 "10개 반찬은 기본이고 국도 함께 준비된다.
선수들의 영양을 위해 불고기 파티를 일주일에 2,3차례 한다"고 말했다. 여자선수들이다 보니 다이어트를 위해 고열량의 음식은 피한다. 특히 마요네즈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고.
■ 땀냄새 지우는 아기자기한 여인의 향기
여자들이 한데 어울려 지내는 곳이라 남자숙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아기자기함이 엿보였다. 미용과 피부관리에 관심이 많은 여자선수들이라 화장대에는 갖가지 화장품이 가득하다.
기본 화장품 종류에 적외선을 차단하는 제품들이 다수. 또 수분팩과 미백팩, 열을 식혀주는 데 효과가 있는 알로에 등의 기능성 제품들도 눈에 띠었다. 이와 별도로 정기적으로 피부관리를 받는 선수들도 있다고. 선수들은 뽀얀 피부 유지를 위해 파우더와 트윈케익 등으로 최대한 두텁게 화장을 하고 훈련장에 나가는 게 기본이다.
십자수를 뜬 베개와 귀여운 인형, 캐릭터 제품들이 곳곳에서 여인의 향기를 느끼게 했다. 여가시간에는 삼삼오오 짝지어 인터넷쇼핑과 대형마트 산책 등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공격수 김주희는 "원정경기를 다녀온 뒤에는 어김 없이 택배가 한 묶음 쌓여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 '꽃남'들을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조연영은 "TV에서 가수 2PM의 닉쿤 등 꽃미남들이 나오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몰려든다"고 웃었다. 또 몇몇 선수들은 영어학원을 다니며 알차게 시간을 활용한다.
■ 철저한 벌금제로 자율체계 확립
클럽하우스가 아닌 가정집에서 합숙생활을 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현대제철과 같은 가정집에서의 합숙은 선수들이 집처럼 편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게 강점. 하지만 선수단의 관리와 통제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96년부터 가정집에서 합숙생활을 해왔던 '노하우'가 선수단 관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안종관 현대제철 감독은 "가정집에서의 합숙은 장점이 더 많다. 선수들에게 스케줄표를 짜주면 알아서 움직인다"며 "이를 위해 고참들에게 힘을 실어줬고 서로간 신뢰가 쌓이면서 무리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의 자율관리는 철저한 벌금제가 돕고 있다. 최소 1,000원에서부터 최대 100만원까지 벌금의 폭이 크다. 가령 정해진 식사 시간에 1분 늦을 때마다 1,000원이 매겨지고, 훈련 시간을 준수하지 않을 시에도 1분당 1만원이 부과된다. 가장 비싼 벌금 항목은 무단이탈과 숙소 내에서의 음주. 또 이동 시에는 일체 MP3를 듣는 게 금지됐다.
인천=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