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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 추억 속으로] 태권도 헤비급의 지존 김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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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 추억 속으로] 태권도 헤비급의 지존 김제경

입력
2009.07.0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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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을 복용하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7년 뒤에 죽게 된다. 이 약을 복용할 것인가?" 몇 년 전 미국 육상 국가대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80%가 약을 먹겠다고 대답했다. 운동선수에게 올림픽 출전은 꿈이다. 하물며 금메달 가능성이 있다면 목숨이라도 거는 게 운동선수의 심리다.

시드니올림픽이 개막하기 딱 한달 전인 2000년 8월. 자타가 공인한 금메달 0순위 김제경(39)은 살신성인하는 마음으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했다. 김제경은 92년부터 세계 정상에 올라 타의 추종을 불허한 무적의 '태권도 황제'. 주위에서는 "김제경은 한 발로만 싸워도 금메달은 떼어놓은 당상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벅지 부상이 마음에 걸렸던 김제경은 "내 욕심 때문에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이 무너질 수 있다"며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바보' 김제경이 양보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김경훈(34)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흐르자 금메달리스트 김경훈을 기억하는 이는 많아도 살신성인한 김제경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 희생하는 것도 태권도 정신

미국에서 태권도 지도자로 변신한 김제경은 1일 "제가 아니라 후배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무조건 딴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라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은메달보다 금메달이 중요합니다. 몸이 성한 사람이 가서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당시 김제경은 끝까지 태릉선수촌에 남아 김경훈의 훈련 파트너로 '금메달 도우미'를 자처했다. 김제경을 발굴한 김화영 울산태권도협회 전무는 "제경이가 승부욕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밴 탓에 올림픽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서도 마음을 비울 수 있었을 거다"고 설명했다.

삼성에스원 김세혁 감독은 "부상을 안고 뛰어도 상대를 제압할 정도로 김제경은 절대강자였기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즐기는 마음으로 세계 정복

울산이 고향인 김제경은 고교 시절까진 눈에 띄질 않았다. 그러나 동아대에 입학하면서부터 실력이 급성장했다. "고등학교까진 코치님이 시켜서 한 운동이라면 대학에서는 제 스스로 운동했습니다."

국가대표였던 친구 강창모를 보면서 다양한 발차기와 스텝을 연구했고, 체급을 웰터급에서 헤비급까지 올리면서 스피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남들은 세계 정상을 노렸지만 전 그저 태권도를 즐겼습니다. 성적에 대한 욕심은 없었지만 기술이든 체력이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될 때까지 노력했죠."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지만 자율 태권도의 위력은 금방 나타났다.

91년 국가대표가 됐고, 92바르셀로나올림픽(시범경기) 금메달을 시작으로 세계선수권 3연패(93ㆍ95ㆍ97년), 98아시안게임 우승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무적'으로 군림했다.

■ 미국에 자리잡은 태권도 전도사

김제경은 은퇴 후 미국 포틀랜드에 정착했다. 그는 엘리트 체육이 아닌 생활 체육을 선택했다. '월드 챔피언 태권도' 관장으로서 태권도 기술보다는 예의와 겸손 등 태권도 정신을 먼저 가르쳤다.

'지도자로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생활 태권도를 보급하고 전파하는 것도 보람이 크다"고 대답했다. 돈과 명예를 뿌리친 김제경은 "미국 땅에 태권도를 퍼트리는 게 국위선양이지 않느냐"며 웃었다.

성실과 집념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던 김제경은 세속에 대한 욕심을 초월한 수도승처럼 보였다. 김제경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제자 앨런 인그램(55)은 "김 관장님으로부터 태권도 기술은 물론이고 생활 태도와 정신 자세 등 배울 게 많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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