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실용을 강화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최근의 조문 정국에 이르는 정치적 교착상태와 사회 분열의 심각함에 비춰 정책기조의 수정은 불가피하고 적절한 것이다. 국민 다수의 민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정성과 실효성이 관건
문제는 정부의 진정성과 실효성이다. 만일 중도 표방이 정략적 기만책으로 드러나거나 실질적인 사회통합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실망은 정국을 더욱 파국적 상황으로 이끌고 사회분열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중도실용 정치의 성공요건을 살펴본다.
첫째, 소통정치 복원은 밀어붙이기 행태를 지양하고 정치 현안을 끈기 있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줄 때 가능하다. 그래야 국민도 중도실용 노선의 진정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소통은 정치의 상대방을 적대자가 아닌 평등한 경쟁자 혹은 협력자로 존중할 것을 전제한다. 만일 다수파가 다수의 힘을 이용하여 소수파를 배제, 억압하거나 다수결 절차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다수의 독재나 다를 바 없고 소수파의 극단 투쟁을 초래하게 된다.
둘째, 사회통합은 구호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과 입법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정부가 중도실용을 표방한 것은 지금까지의 정책이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그 동안 정책에서 소외된 계층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전향적인 정책 집행이 긴요하다. 특히 사회통합은 부유하고 유능한 계층의 양보 없이는 공염불에 그치기 십상이다. 공존공영의 정신을 가지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발휘해야만 사회통합을 위한 서민들의 진심어린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
서민들이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층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서민들은 사회통합을 위한 지도층의 호소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저임금 인상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회 일각의 이기적 자세는 사회통합에 역행하는 것이다.
셋째,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실용 정치라고 해서 무원칙적 정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도실용의 정책노선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원리에 철저히 종속되어야 한다. 정책 집행과 공권력 행사는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 보호 및 사법권 독립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 원칙은 진보ㆍ보수와 실용ㆍ이념의 대립을 떠나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우리 공화국의 근본 원칙이다. 중도실용 정치의 명분 아래 헌법 원리가 침해된다면, 그것은 국민의 피땀으로 일구어온 민주공화국의 명예에 커다란 흠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도실용 정치의 실천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관용과 신뢰 및 상호존중의 문화를 창출하는 공동의 노력과 병행되어야 한다. 소통과 사회통합은 여야 정치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존중하는 시민문화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관용과 상호존중 문화로
정치의 세계를 공존공영의 세계가 아닌 승자독식의 세계로 보는 그릇된 인식이 확산되면 대화와 토론의 정치는 배제와 저항의 극단정치로, 상생의 정치는 공멸의 정치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중도실용 정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적 소통과정을 복원하고 실효성 있는 사회통합 정책을 집행함과 더불어 관용과 신뢰, 그리고 상호존중의 시민문화를 창출하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비환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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