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 여성들을 일컬어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바로 '선영이'다. 2000년 5월 밀레니엄 시대가 막 열리던 당시, 거리 곳곳에 '선영아, 사랑해'라는 의문의 현수막들을 내걸고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 이색 광고로 단번에 유명세를 탄 여성포털 '마이클럽(www.miclub.com)'. 여성들만의 인터넷 공간이라는 실험 무대를 열고 여성이 세상을 보는 독특한 시각과 감성이 가득한 사이버공간을 만들어내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했던 마이클럽도 이후, 인터넷 포털들의 숨가쁜 변신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공룡처럼 거대한 네이버, 다음 등의 대형 포털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온라인 광고와 마케팅을 시장을 석권하면서 여성 포털을 비롯한 전문 포털들의 운명은 역사 속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로라하는 전문 포털들이 속속 쓰러져가는 상황에서도 이 여성 포털의 저력만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많은 '선영이'들의 입담이 쌓이고 그 어떤 상품 전문가보다 섬세하고 예리한 여성 소비자들의 체험담, 연애와 결혼, 육아 등에 얽힌 삶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나날이 숙성돼 구수해지고 독특한 풍미를 가진 장맛으로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난 해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한파가 전 세계에 몰아치면서 예외 없이 국내 기업들의 광고 마케팅 시장은 엄청난 한파를 맞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전문 포털의 힘은 오히려 강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여성 특유의 수다와 일상 속에서 깨달은 지혜들이 마이클럽으로 응집되면서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의 눈길을 다시 끌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해 연말에는 마이클럽의 엄마들이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30대 엄마의 사교육 다이어트'라는 책까지 펴냈을 정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이 드는 대형 포털보다는 분명한 타깃인 주부와 직장 여성들이 모여 있는 여성 포털이 신제품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빠르게 모으고 홍보에도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이클럽은 초창기 여성 포털로 출발해 9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여성이 단순히 오고 가는 광장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때로는 가슴이 찡한 사연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는 커뮤니티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머지않아 대형 포털과 마이클럽 같은 전문 포털의 제2차 전쟁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작은 것이 강하다'는 인터넷의 흥행법칙이 어떻게 포털 비즈니스의 세계와 힘의 균형을 바꿀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종래 IT칼럼니스트 jongra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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