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시기 전까지 못난 막내 딸에게 '넌 간첩이 아니다'고 믿어 주셨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에서 노동운동을 벌이다 해직됐던 신순애(55ㆍ여)씨는 32년 만에 자신을 포함한 옛 동료 등 9명이 최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 받았다는 한 통의 전화에 목 놓아 울기만 했다.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 간부였던 신씨는 1977년 9월 9일 을지로6가의 한 건물 앞에서 노조원 수십명과 함께 경찰의 노동교실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돼 봉제공장에서 해고됐다.
11개월의 형을 살다 나왔지만 세상은 냉정했다. 미싱 일밖에 몰라 다시 봉제공장에 취직하려 해도 받아 주는 이가 없었고, 형사들이 늘 따라 붙는 통에 한 직장에서 6개월 이상을 견디지 못했다. 함께 세 들어 살던 어머니는 "당신 딸은 간첩이니 집을 비워달라"는 당시 집 주인의 횡포에 충격을 받아 쓰러졌고, 결국 79년 세상을 등졌다.
이후 평화시장 등을 전전하던 그는 98년 미싱 일을 그만두고 중랑구의 한 가게에서 김밥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는 바람에 수천만원의 보증금을 날리기도 했다.
10년 넘게 청소년 상담센터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지인의 도움으로 2007년 11월 민주화보상심의위에 해직자 명예회복을 신청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초ㆍ중ㆍ고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2006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입학,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는 "이제 와서 인정 받으면 뭐하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노조활동을 탄압하고 왜곡했다는 걸 당사자(국가)로부터 직접 인정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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