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산업은행의 역할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좋은 매물이 나와도 원매자가 없어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인수에 나서고 있는 거의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29일 M&A 업계에서는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결국은 산은 사모펀드(PEF)가 인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권과 인수 가능 기업의 자금이 부족해졌고 건설업황도 좋지 않기 때문.
산은 관계자는 "금호그룹이 시장에 대우건설을 내놓은 만큼 산은 PEF보다 가격을 높게 쳐줄 다른 원매자를 찾아볼 테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은 만큼 동시에 산은 PEF에도 의사를 타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산은은 이미 동부그룹 계열사 동부메탈을 PEF를 통해 인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앞서 산은은 세계 점유율 1위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통화옵션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유동성 위기를 겪은 중소기업 썬스타특수정밀도 '턴어라운드펀드'를 조성해 인수했다. 선박펀드를 조성해 해운회사들이 매물로 내놓은 선박도 인수할 계획이다.
M&A 업계에서는 매물이 쏟아지고 이를 소화할 만한 주체는 없는 상황에서 산은이 '큰손'으로 부상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이 외국계 사모펀드에 헐값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 과거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간 것도 결국은 국내에 마땅한 인수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각 주체에 차후 우선인수권을 부여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등의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매각에 나설 수 있다는 것도 국가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또 산은의 목적은 '차익 극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모펀드들이 인수 후 정리해고와 알짜 재산 매각 등 무리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빚어지는 충돌을 막을 수도 있다. 산은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일반 증권사나 투자회사 등에 비해 국민연금 등의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민영화를 앞둔 산은 입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의 매각이 연기된 상태에서 재매각이 쉽지 않은 초대형 매물을 또다시 사들인다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기업의 구조조정 촉진과 PEF의 재무적 투자자를 만족시킬 만한 수익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PEF 조성과 운용에도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한 회계법인 M&A 관계자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단독 인수자로 입찰에 참여하면 '가격 후려치기'에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산은 PEF가 주요 매물을 인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의미가 있다"면서도 "이 같은 대형 매물을 계속 인수하는 것이 민영화를 앞둔 산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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