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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농암 종택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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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농암 종택에 다녀와서

입력
2009.06.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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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안동을 다녀왔다. 지인 K씨가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진면목을 보고 가시라고 여러 번 청했다. 터미널에 내리니 안동이 고향인 K씨가 반가이 맞았다. '450년 만의 외출'로 유명한 <원이 엄마의 편지> 가 출토된 지역의 귀래정(歸來亭)으로 먼저 가서 국화차를 대접 받았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 일행은 국학박물관과 유교박물관을 둘러보고 우리나라에 정착한 유교문화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유교는 중국에서 발생했지만 한반도에서 꽃피었다. 우리 전통 속의 생명 평화 사상은 비단 유교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 유교에 빚지고 있다 할 것이다. 2007년 만난 일본의 중견 여배우 구로다 후꾸미씨는 "한국인의 예쁜 마음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하다. 아마 유교 때문이 아닌가 싶다"면서 한류가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배경에 대한 힌트를 던졌다. 물질문명의 폐해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은 한국의 유교적 전통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농암(聾巖) 종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낮을 한참 지난 시각이었다. 숲이 무성한 계곡, 속내를 드러낸 하얀 모래와 강이 흐르는 것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초여름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적요 속에 고즈넉한 고택이 한가로워 보였다. 고택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단청이 칠해져 절의 암자 같은 느낌이 드는 애일당(愛日堂)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 한다. 고택 앞 강가의 절경이 빼어난 낭간 정자에 앉아서 쉬었다. 시원한 산들바람, 은빛을 돋우며 휘돌아 흐르는 옅은 강물과 저 멀리 이어진 짙푸른 녹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도심에서 짊어지고 온 번잡한 생각들이 씻기어 머리 속이 명징한 느낌이 들었다.

농암 이현보(李賢輔)가 한양에서 늘 돌아가고 싶어 했던 분강촌은 안동댐 수몰지역이 되고, 이곳은 지금 종손이 건물을 뜯어 옮겨 지은 것이다. 농암은 세속적인 벼슬이나 영달에 욕심이 없었고, 자연을 관조하고 즐기는 소탈한 삶을 지향하였다. 분강에 조각배를 띄워 낚시를 하고 달과 술을 즐겼다. 조선은 계급차별이 심한 사회였지만 그는 낮은 자세로 이웃과 더불어 지내는 성품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가 <어부가> 다.

안동하면 퇴계와 도산서원이 먼저 떠올라 자못 딱딱하고 무거운 철학을 연상할 수 있으나 농암의 문학이 있어 이 버거움을 한결 덜어준다. 뿐만 아니라 이현보-이황-권호문으로 이어지는 '영남가단'은 송순-정철-윤선도의 '호남가단'과 쌍벽을 이루었다. 이렇듯 한가함과 느림의 삶을 영위하였지만 애일당을 지어 심신을 수양하고 독서와 시문에 정진한 선비였고, 부모를 위해 잔치 때 색동옷을 입고 효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애일(愛日), 날을 사랑하다. 400여 년 전의 그 옛날, 시계도 없고 시간의 개념에 무신경할 것 같은 곳, 한양에서 수백 리 떨어진 만첩청산 고을에서 한가로이 소박한 삶을 영위하면서 시간을 아끼고 살아간 농암을 떠올리면 바다가 없는 고장의 '간고등어'만큼이나 아이러니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 특히 도시인의 삶은 종종걸음으로 시간에 쫓기며 부산하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문명의 기구들, 편리와 빠름의 속도감 속에서 우리의 정서는 도리어 피폐하고 건조해져 인간성을 잃어가고 창의성은 질식된다.

올해도 거의 반이 지나고 있다. 진정으로 시간을 아끼고 날을 사랑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를 되짚어 본다. 농암 종택 정자에 앉아 고택과 애일당을 둘러보고서.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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