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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플래카드를 떼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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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플래카드를 떼어 내자

입력
2009.06.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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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국가는 유난스럽게도 플래카드가 많이 걸린다. 북한은 온 나라가 플래카드다. 내용도 섬?하다. 우선은 김정일 부자의 칭송이 주류이고, 그 다음은 미국이나 남한을 욕하는 내용이다. 플래카드가 갖는 독특한 마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플래카드는 사람을 선동하고 흥분시키는 이상야릇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캠퍼스 망치는 선동ㆍ광고물

우리나라도 한때는 플래카드가 거리를 난무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플래카드에 대해 한번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특히 대학 캠퍼스가 문제다.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을 가나 정문에서부터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이 플래카드다. 특강 계획이 있어 방문할 때는 자기 이름이 플래카드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일도 플래카드로 알리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플래카드가 겹겹이 걸려 하나가 다른 것을 가리기도 한다. 따라서 서로 앞 자리에 걸려는 신경전도 벌어진다.

대학 캠퍼스는 아름다운 하나의 정원이다. 학교당국은 캠퍼스를 아름답게 꾸미려고 많은 예산을 쓰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꽃들과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어 있는 곳이 대학 캠퍼스다. 그 속에 젊고 싱그러운 청춘 남녀가 희희낙락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하모니를 단숨에 뭉개버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여기 저기 난삽하게 걸려 있는 플래카드다. 형형색색의 무질서한 플래카드는 캠퍼스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다가 때로는 예쁜 건물에 대형 걸개 그림까지 걸쳐 놓는다. 아름다운 화폭에 먹물을 뿌려버린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다. 따라서 캠퍼스는 공부하는 분위기로 유지되어야 한다. 공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선진국의 유명 대학을 가보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부하는 냄새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차분하고 조용하고 엄숙하다.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플래카드는 대학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플래카드는 노는 곳에 걸리는 것이다. 또는 노동하는 곳에 걸린다. 마음을 자극하고 선동해야 노는 것도 신이 나고, 노동도 능률이 오른다. 그러나 학문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능률이 오른다. 플래카드는 공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 선진국이 되었느냐의 징표는 대학에서 플래카드가 사라졌느냐일 수도 있다. 선진국 대학들에는 전혀 이런 일이 없으니까. 요란스러운 플래카드는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들뜨게 만든다. 공부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판 질퍽하게 놀아 보자고 오는 곳인 양. 대학들도 이런 점을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따라서는 설치 장소를 별도로 지정하고, 설치 틀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쯤은 우리의 대학에도 플래카드 거는 문화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이제 그 정도는 성숙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의사 전달 수단이나 정보제공 수단이 무궁무진하게 발달해 있다. 인터넷도 있고, 문자메시지도 있고, 방송도 있고, 신문도 있다. 그리고 게시판도 잘 활용할 수 있다. 플래카드는 이런 수단들이 없을 때 사용하던 원시적인 알림 수단이다. 시대에 맞게 우리도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대학이 달라져야 사회도 변화

특히 대학은 사회를 선도할 의무가 있다. 대학에서 먼저 플래카드를 떼어내야 일반 거리에서도 플래카드 문화가 새롭게 정착할 수 있다.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국민들의 미적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데 의식 수준은 여전히 걸개 그림이나 플래카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선진국에 이르는 길은 더딜 수밖에 없다. 거리가 무질서한 광고판이나 펄럭이는 플래카드로 채워져 있다면 그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선진국은 모든 것이 선진국다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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