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 질베르 아슈카르 대담ㆍ강주헌 옮김/사계절 발행ㆍ520쪽ㆍ2만2,000원
중동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는 매일 중동의 뉴스를 접하지만 대부분 서방 언론의 눈에 걸러진 모습이다. 이를테면 지금의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해, 한국인은 쉽사리 '민주화 투쟁'이라는 서방 언론의 프레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슬람 보수주의의 반동이라는, 어쩌면 서구 저널리즘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투쟁일 수도 있다. 한국인의 인식 속의 중동은 지리적 거리보다 더 먼 곳에 있다.
이 책은 미국의 대표적 진보 지성인 노엄 촘스키 MIT 교수와 프랑스 국적의 레바논계 중동 전문가인 질베르 아슈카르 런던대 교수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테러와 음모론 등 민감한 주제부터, 팔레스타인의 정치 지형, 반아랍적 민족주의 등 폭넓은 주제를 종횡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좇다 보면, 무지와 편견에 가려 있던 중동이라는 세계의 진실에 한 발 다가서게 된다. 2006년 1월 사흘에 걸친 두 사람의 대담을 스티븐 R 샬롬 윌리엄패터슨대 교수가 정리했다.
촘스키와 아슈카르는 큰 주제에서 방향을 같이한다. 그러나 각론에서 때로 의견의 차이를 보이며 충돌을 빚기도 한다. 예컨대 중동에서의 민주주의를 꾀하는 서방의 노력이나 이스라엘 정계 등에 대한 미시적 분석에서 두 사람은 시각 차를 드러낸다. 이 차이는 30살이 넘을 때까지 레바논에서 교육받고 생활한 아슈카르의 배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촘스키의 논지는 포괄적이고, 아슈카르는 구체적이다.
두 사람은 '중동 민주화'라는 이슈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아슈카르는 "부시 정권이 '악의 화신'이라고 비난한 이란에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미국의 오랜 동맹인 사우디 왕국에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비난한다. 촘스키도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25~30년 뒤에 중동 민주화에 도움을 줬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일본의 파시즘이나 오사마 빈 라덴의 영향과 같은 것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한다.(98쪽)
이 책은 중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서구의 프로파간다에 젖어 있는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프로파간다가 중동을 넘어 한반도에서도 전개될 수 있다는 섬?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중동 평화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통해, 세계의 진실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걷어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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