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W 오어 지음ㆍ이한음 옮김/현실문화 발행ㆍ336쪽ㆍ1만4,000원
사람들은 이제 위기를 거론하는 모든 담론에 피로부터 느낀다. 환경, 기후, 교육, 인문학….무수한 것들의 죽음이 유행처럼 경고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연명하고 있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절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생태 문제는 연구비를 더 따내려는 과학자들에 의해 위기가 과장돼 있다는, '신용사기' 혐의까지 받는다. 생물학적 홀로코스트가 전 지구적으로 자행되고 있는데도, 우리들은 지구에 비상사태 같은 건 없는 양 대체로 살던 대로 살아가고 있다.
미 오벌린대 환경학 및 정치학 교수인 데이비드 W 오어의 <학교를 잃은 사회, 사회를 잊은 교육> 은 '생태 문맹'인 가짜 지식인들로 가득한 세계를 향해 생태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책이다. 1주일에 1~2시간 '환경' 과목을 교과과정에 끼워넣자는 얘기가 아니다. 저자의 해법은 담대하다. 학교를>
교육이라는 판을 완전히 새로 짜 인류의 재교육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지구 거주 가능성의 급격한 쇠퇴라는 이 날벼락 같은 사태를 초래한 것도 교육이요, 이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도 교육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지구 생태의 위기가 무엇보다도 가치, 사상, 전망, 지식의 위기이며, 따라서 그것은 교육 내의 어느 한 위기가 아니라 교육 자체의 위기라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근대 이래 지속돼온 학교라는 제도는 산업경제에 봉사하는 지식공장으로서 세계적 수준의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분투해왔다. 학습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데카르트의 계몽적 이성은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착각을 뿌리깊이 심어주었고, 그것은 분절된 학문체계를 통해 '전문화'라는 신화를 구축했다.
예컨대 생태학이나 열역학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경제학자들은 응당 감가상각으로 처리해야 할 토양 침식, 공기와 물 오염, 자원 고갈의 비용을 국민총생산에서 빼지 않은 채 '한없이 팽창하는 경제'라는 불가능한 개념을 옹립시켰다. 협소하게 정의된 시장경제는 그 바깥의 다양한 가치들을 다루지 못한 채 우리가 더 부유해지고 있다는 허황된 복음을 전파한다.
이런 생태적 결함으로 점철된 경제 이론을 배운 학생들은 전체 계(系) 수준에서 생각하는 법, 연관성을 찾는 법, 큰 질문을 하는 법,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법은 도무지 모른 채 생물권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 명석한 생태 문맹들은 성공과 출세를 도모하며 세계를 파탄낸다. 미래를 할인하며 살아가고 있는 주제에!
그러므로 저자는 다음 세기의 생태적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모든 교육은 환경교육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해법은 구체적이다. 생태적으로 더 현명한 사람, 즉 '생태지성'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열역학 법칙, 환경윤리학 등을 배우지 않고서는 어떤 교육기관도 졸업할 수 없게 해야 하고, 농업은 전공 분야가 아닌 필수 교양과목으로 편입돼야 한다. 언론들이 매기기 좋아하는 대학 순위 역시 생태적 기준에 따라 재조정돼야 한다.
실용과 현실이 금과옥조인 오늘날, 저자의 이런 주장들은 아마 별나라의 뜬 구름 잡는 얘기로 치부되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퍼드의 말을 인용해 미리 반박한다. "현 시대는 몽상가만이 현실적인 인물인 시대다."
1994년에 나온 책이지만, 시점과 주어를 오늘날의 한국으로 바꿔 읽어도 전혀 현실적합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게 이 책의 서글픈 장점이다. 경제와 환경과 교육을 하나의 거시적 관점에서 읽어내는 저자의 명쾌한 논조는 물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번역으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번역가 이한음씨의 유려한 번역도 매력이다. 만들어진>
다만 교육열 과도한 한국 사회의 독자들을 유인하려는 듯, 생태라는 키워드를 빼먹음으로써 원제(Earth in Mind, On Education, Environment, and the Human Prospect)를 왜곡한 제목이 사악하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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