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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존엄사 논란이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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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존엄사 논란이 남긴 과제

입력
2009.06.2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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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으나 환자는 스스로 호흡을 하면서 정상적인 생리적 신호들을 유지해 적잖이 당혹스러운 상황이 됐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짧은 시간에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의학적 판단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새삼 존엄사의 기준에 대한 논란을 불렀지만 생명 의지의 신비를 함께 보여 주었다.

구체적 지침과 제도 마련을

이번 사건은 김 할머님을 비롯한 많은 환자 분들이 고통을 받는 동안 의료계와 법조계, 종교계, 정부 등이 임종환자 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저마다 '존엄사다, 아니다' '생명경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논란에 머물러 정작 임종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근본적 해결책 마련에는 소홀했다.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진지하면서도 슬기롭게 대책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바람직한 죽음은 어떤 것이고, 의료계와 정부와 언론과 종교계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제시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더라도 환자의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합리적인 의학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임종환자 관리지침과 법적인 안전장치 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사회경제적 지원과 국민의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 등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먼저 의료계는 서둘러 구체적인 임종환자 관리지침을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거쳐 의료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법원이 주요원칙을 제시했더라도 의료현장에서의 개별 환자에 대한 치료중단은 변화하는 환자 상태와 치료에 대한 반응 등을 고려해서 의학적 판단과 의료윤리 원칙에 따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3년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암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보건복지부의 암환자통증관리위원회는 암성통증관리지침을 마련, 20여 개 관련학회의 합의를 도출하여 의료현장에 적용하고 정부가 마약성 진통제 처방의 보험적용 제한을 풀도록 한 경험이 있다.

임종환자 관리지침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의료계뿐 아니라 법조계, 종교계, 학계, 언론 등 폭 넓은 분야와 계층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또한 연명치료 중단만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이 죽음의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전인적(全人的) 돌봄을 위한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국회는 의료현장에서의 혼선을 줄이기 위한 환자의 사전의사결정 제도와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관련된 법안을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 우선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제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기환자가 질병의 악화로 인해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사용에 대해 사전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셋째, 정부는 말기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부담을 줄이기 위한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제도화와 함께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재정적 지원 대책 및 공적 간병 등의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론과 종교계 등은 존엄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해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노력 필요해

이러한 사회 전체의 노력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헌법이 보장한 '존엄한 죽음'을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만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기획조정실장 · 가정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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