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도 너무 빠르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추진 결정 6개월 만인 다음주부터 주요 공사 발주를 시작한다. 지난해 말 '4대강 살리기 기획단' 발족 이후 전국 시ㆍ도 설명회와 전문가 그룹 자문, 관련 학회 토론과 공청회, 마스터플랜 발표 등이 불과 6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이뤄진 데 이어 본격적인 공사 시행까지 조급하게 추진되고 있어 '속도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대한민국 물 관리와 국토 활용의 패러다임을 바꿀 대역사인 만큼 기본을 지키면서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실 우려 낳는 '속도전'
24일 충남 부여읍 군수리 금강 주변의 한 경작지 일대. 한국토지공사 보상 담당 직원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이뤄진 조사팀이 4대강 사업 토지보상을 위한 기초조사에 나섰다. 이들은 금강 주변의 비닐하우스를 돌며 경작 현황을 일일이 파악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달 말까지 총 35일. 토공과 각 지자체 파견 인력은 금강과 한강, 영산강, 낙동강 등 4대강 주변 110㎢(서울시 면적의 6분의 1)를 돌며 토지보상을 위한 기초 조사를 한달여 만에 끝내야 한다. 전체 60개조가 4대강 전역을 조사하니, 1조(2~3명) 당 183만㎡(60만평)를 맡는 셈이다.
어지간한 택지개발지구에 버금가는 면적을 2~3명이 한달 만에 조사를 마쳐야 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다. 마스터플랜이 발표되기 직전인 5월 하순부터 기초 초사가 진행됐지만, 25일 현재 국토해양부 집계에 따르면 겨우 60%가량을 끝낸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 작업이 부실해질 경우 실제 보상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문화재조사와 환경영향평가에서도 부실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문화재 지표조사 과정에서 육상조사만 하고, 수중조사를 시행하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일반 개발사업에서조차 초기인 기본계획 수립 직후 받아야 할 환경영향평가도 1단계 공사 발주 2개월 후인 8월에야 늑장 실시되고, 그나마도 3개월 만에 졸속으로 끝날 판이다. 수백가구 규모의 주택개발사업이나 도시개발사업도 환경영향평가에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세종대 행정학과 변창흠 교수는 "현재 드러난 것만 2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집행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는 등 종합적인 정비계획 수립 없이 졸속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속도 조절과 건전한 감시 필요
이 때문에 여당 내부에서도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4대강 사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전문가 논의나 환경영향평가 등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마치 전(前) 정권이 혁신도시 사업 밀어붙인 것을 다시 보는 듯하다"고 우려했다. 당내 일부 의원들도 마스터플랜에서 드러난 미비점이나 지자체 간 협의가 필요한 대목 등을 당 정책위원회에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둘러싼 대운하 논란과 졸속 추진에 따른 부실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임기 내 완공이라는 성급함을 버리고 기본에 충실하는 한편, 야당과 시민단체도 막연한 반대가 아닌 건전한 비판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수십 조원이 투입되는 대역사에 걸맞지 않게 성급히 추진되는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며 "4대강 살리기가 당초 취지인 환경개선,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지를 냉정하게 감시하고 조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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