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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아름다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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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아름다운 나라

입력
2009.06.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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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은 네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총을 쏜 자는 바로 체포되었으나,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이 1948년 4ㆍ3사건과 1950년 6ㆍ25전쟁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당시 형성 중이던 냉전체제ㆍ분단체제가 그에게 총구를 겨눈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백범은 38선을 베고 죽으리라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꿈과 이상을 남기고 떠났다.

백범의 그 꿈이 실현되려면

이제 백범의 꿈이 되살아날 수 있는 조건이 새롭게 마련되고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냉전체제는 사실상 붕괴했고, 그와 짝을 이루던 분단체제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북핵 위기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분단체제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분단체제 너머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때가 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길목에서, 백범이 말한 '아름다운 나라'를 상기해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어리고 연약한 신생 조국의 청사진으로 내놓은 노투사의 꿈이 자못 감동적이다. 이제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과제이다.

'아름다운 나라'는 중형(中型)국가로 풀이할 수 있다. 백범은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했다. 노자가 말하는 "작은 나라 적은 인민"(小國寡民)의 유토피아의 모습과 통한다. 관련하여 맹자는 "어진 자라야 작은 것을 섬기고 지혜로운 자라야 큰 것을 섬긴다"는 사소(事小)와 사대(事大)의 결합을 주장했다. 최원식 교수는 이를 "소국주의를 멀리 내다보며 대국과 소국이 함께 모이는 중형국가"로 말한다.

어떻게 중형국가로 갈 수 있을까? 근대세계는 국민국가들을 단위로 한 축적과 통치에 기초하여 국가간 권력관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국가간체계를 지역간체계로 개편하는 것이 하나의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지역간체계의 주체는 지역행위자인데, 대표적인 것이 유럽연합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에서도 ASEAN+3, 한중일 FTA, AMF와 같은 논의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아시아에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비대칭적인 강자가 존재한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국가를 단위로 하는 지역 형성 이외에 도시간 네트워크라는 이행경로를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때 도시는 국제적 그물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규모를 갖춰야 한다. 농촌이 이러한 네트워크에 접속되기 위해서는 도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도농복합체를 형성하는 것이 유력한 방법이다.

'아름다운 나라'는 또한 새로운 혼합경제 모델이다. 백범은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면 족하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문화적 다양성을 선구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극단의 경제만능주의, 성장지상주의를 넘어선 모델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모델이란 어떤 것인가? 미시경제 상으로는 생산자주의 일변도에서 생산자주의와 소비자주의의 혼합모델을 창출하는 것이다. 거시경제 상으로는 성장지상주의에서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혼합모델로 가야 한다. 경제조직 상으로는 전형적으로 존재하는 시장과 기업 모델 이외에 다양한 혼합형 조직들이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혼합형 조직은 기업네트워크, 파트너십,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이는 첨단산업은 물론 전통적 서비스업이나 농업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간이 두터운 사회 이뤄야

이와 같은 혼합경제들은 남북 연합에도 꼭 필요하다. 북한경제를 생산자주의, 성장주의, 시장주의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면 이행 비용이 엄청나게 커지고, 미래세대의 발전에 필요한 사회문화적 토대도 파괴하고 말 것이다.

'아름다운 나라'는, 강자의 욕망을 거절하는 정치, 인공적 통합보다 자연적 혼합이 우세한 경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이 두터운 사회이다.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나라'에 다가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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