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26일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내놓았다. 대책안은 대학 및 특목고 입시, 학원 심야교습, 방과후 학교 등 사교육을 유발하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이번 대책안을 'MB식 사교육 개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당ㆍ정간 오랜 조율 끝에 이달 초 확정된 교육과학기술부의 사교육비 종합 대책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부적합' 판정을 내린 직후 나온 방안이라는 점, 사실상 당ㆍ청 주도로 '사교육 새 판 짜기'에 나섰다는 점 등에서 정책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관측이 많다.
이날 열린 정책 토론회의 주제를 '사교육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사교육비 절감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지도 확고해 보인다.
그러나 학생ㆍ학부모ㆍ대학 등 각 집단의 이해관계 충돌을 해소하지 않는 한 '자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일정 부분 사교육을 동반할 수밖에 없어 개선안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게 일 전망이다.
● 내신 경쟁 없앤다
당ㆍ청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대학ㆍ고교의 입시 제도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중에서도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데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내신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대입의 경우 고교 1학년 학교생활기록부 성적을 대입 전형 자료에서 빼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재 대학들이 고1 내신 성적을 20~30% 비율로 반영하는 산출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입시가 조기에 과열되는 폐단을 안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교육과정특별위원회가 초1~고1에 적용(10년)하던 국민공통교육 과정을 중3까지(9년)로 줄이기로 결정한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레 고1 내신 성적이 대입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내신 9등급 상대평가제를 5등급 절대평가제로 바꾸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안선회(한국교육연구소 부소장) 미래교육위 자문위원은 "현행 상대평가 방식은 등급을 기준으로 획일적인 서열 매기기만 가능해 '실력'이 아닌 '등수' 경쟁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 입시는 최근 교과부 안보다 한층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당ㆍ청은 "수학ㆍ과학의 가중치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교과부 대책 정도로는 외고의 설립 목적인 외국어 인재 양성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과학고도 현재 입시에서 80%에 달하는 전 과목 내신 반영비율을 줄이지 않는 한 사교육비 경감 효과는 거의 없다는 계산이다. 대신 외고는 외국어(듣기, 심층면접)와 국어, 과학고는 수학만 내신에 반영하는 등 해당 교과 중심으로 입시 체제를 재편할 것을 권고했다.
● 풍선 효과 우려
문제는 '풍선 효과'다. 국제중, 자율형사립고 등 특성화 교육을 지향하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언제나 잠재적 사교육 수요를 수반하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가령 특목고 입시에서 내신 반영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설립 취지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교육 절감이라는 정책 목표와는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분석이다.
송경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은 "외고 입시 전형에서 사교육을 유발하는 주요인은 영어듣기와 구술면접인데도 이를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학생ㆍ학부모에게 사교육을 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며 "당ㆍ청이 엉뚱한 내신에 화풀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입 내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에 대해서도 '내신 무력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9등급 내신 상대평가는 고교들의 성적 부풀리기가 심화하면서 2008학년도 대입부터 도입된 정책이다.
하지만 대학 서열화 구조가 공고하고, 상대평가 체제 하에서도 대학들이 고교 내신 성적을 불신하는 상황에서 입시 제도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석차를 매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어 큰 틀에서 절대평가 도입은 필요하다"며 "다만 성적 왜곡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수능 비중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학원 교습시간 제한 논란 재점화
지난 4월 사교육비 문제를 제기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학원 심야교습 일괄 금지' 방안도 다시 쟁점으로 부상했다. 당시 교과부와 일부 여당 의원의 반대로 법제화가 좌절됐지만, 이번 대책안은 학원 운영 시간을 초등학생은 오후 9시, 중ㆍ고교생은 오후 10시로 제한하는 등 곽 위원장이 제시한 '오후 10시 이후 금지'보다 훨씬 강력?규제를 담고 있다. 안선회 자문위원은 "청소년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학원 교습 시간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추진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한 여당 의원은 "사교육의 심각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교육 개혁의 핵심은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 살리기"라며 "자율과 경쟁 원칙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규제는 사교육의 음성화만 조장할 것"이라고 말해 향후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김이삭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