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한 기회에 <10년간의 하루 출가>라는 책을 만나게 됐다. 이런 유의 책이 적지 않지만 특별히 눈길이 갔던 것은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 IMF 실직자들의 자기수행'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나라는 '100년만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발 빠르게 헤쳐나갔다고 평가 받고 자산계층은 신바람을 내지만 주변부에서 해고ㆍ실업ㆍ폐업ㆍ도산 등의 폭탄을 맞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삶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벼랑에 서 있다. 이 문제가 개인의 자기수행으로 해결될 성질은 아니나, 책이 절망의 자리에 새로 꽃피울 희망과 위안은 전해줄 것 같았다.
▦ 저자는 낯설었다. 정석희(66). 은행 지점장을 지내다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한 그는 함께 쫓겨난 사람들이 유리항아리처럼 쉽게 깨질 듯한 나날을 지내는 것을 보고 이들과의 인연을 '나를 찾아 떠나는 하루 출가'라는 모임으로 엮었다. 40대에 까닭 없이 엄습한 육신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섭렵한 동ㆍ서양 고전과 곁눈질한 불교가 토양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전국의 유명 산사를 찾아 다닌 여행이 100회를 맞았다. 흔들리는 버스 안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서투르게 시작한 법문과 문답, 고승들의 잔잔한 가르침 등이 한 권의 책이 됐다.
▦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명망 있는 글쟁이도 아닌, 그저 약간의 지적 '내공'만 감지되는 저자이지만 그의 글에는 분별 사리 배려 소통 관심 등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혜가 잔뜩 녹아있다. 특히 여행 중 '도대체 깨달음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이런저런 방황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참 쉽다. <…매사 남 가르치는 데는 모두가 선생이고 깨달은 자입니다.…(그러나) 세상을 사는 지혜와 덕목인 예의 도덕 자비 사랑 등의 본질은 '입장 바꾸기'입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남을 보듯 내가 나를 보는 것, 그것이 깨달음 아닐까요(192쪽).>
▦ 이명박 대통령이 돌연 중도강화론을 내놓고 중산ㆍ서민층에 초점을 맞춘 하방정책을 주문하자 정치권 학계 언론 등이 자신들의 노선과 이념 성향에 따라 비판과 지지를 쏟아내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국회는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을 둘러싸고 출구 없는 공방에 빠져 있다. 말 그대로 범부(凡夫)도 약간만 생각하면 도달하는 깨달음은 어디에도 없다. 공멸로 치닫는 이전투구 언론계 상황을 개탄한 것이지만, 최근 내부에서 "남에게 겨누는 엄정한 감시와 비판의 칼끝을 자신과 우호세력에게 돌려 보라"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모두가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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