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직후의 '7ㆍ8월 노동 대투쟁' 당시 전국의 청년들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고 외쳤다. 유한계층의 불로소득이 대표적 사회악으로 여겨지고, 소득 재분배가 초미의 사회적 관심사이던 시절이었다. 같은 구호를 지금 외친다면 아마도 청년들이 가장 먼저 달려들 것이다. 일하고 싶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놀며 지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청년실업률은 3월 8.8%에서 5월 7.6%로 떨어졌다지만 체감지수와는 거리가 멀다. 전경련이 낸 '한국형 니트족' 보고서를 보면 그 이유가 짐작이 간다.
■보고서는 '한국형 청년 니트족'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13만 명에 이르러 청년실업자의 3.4배나 된다고 분석했다. '니트(NEET)'는 1997년에 탄생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내각이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태어나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간 말이다. 국내에서는 '학업에도, 취업에도, 직업훈련에도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부각돼 '아예 일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인식되고, 당사자와 가족의 문제로 방치됐다. 유럽 각국이 1980년대에 이미 니트를 포괄적 청년실업 문제로서 다루려고 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보고서는 이런 인식의 왜곡을 바로잡았다. 15~29세의 인구 가운데 적극적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아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다양한 무직자를 '한국형 청년 니트족'에 포함시켰다. 무급 가족노동 종사자, 실업자, 구직 단념자, 취업 준비자, 쉬고 있지만 장차 취업하려는 사람을 모두 넣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주변적 프리터'와 실업자, 무직자를 통틀어 가리키는 것과 비슷하다. '주변적 프리터'는 주 40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일하는 프리터와 달리 빈번히 사표를 내는 프리터로서 언제든 무직자나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주변적 프리터'를 일정 비율 반영하면 '한국형 니트족'의 실상은 한결 뚜렷해질 것이다. 또 병역의무나 대학원 교육 등의 현실을 살려 최소한 일본과 같이 연령을 15~34세로 넓힐 필요가 있다. 몇 년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둔 '퇴직형 니트'나 나이를 먹어 프리터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진 '프리터형 니트'가 주로 30세 이후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형 니트족'은 이번에 드러낸 실상만으로도 큰 우려를 낳는다. 무엇보다 빈곤층에서 부유층 못지않게 나타나 '빈곤의 악순환'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구조적 대응이 화급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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