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우리는 절반의 은둔자이거나 잠재된 은둔자다. 그리고 누구나 다 결국은 외톨이다. 오늘날 은둔의 개념은 모호해지고 확장된다. 반드시 어떤 공간에 숨어들지 않더라도 자기 안에 갇혀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은둔자다."(250쪽)
산다는 것은 나를 보여주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다. 하지만 TV, 인터넷, 택배, 인터넷 뱅킹 등 기술과 서비스의 발달은 다른 사람과 직접 관계를 맺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현실을 변화시켰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립감에 주목해온 장은진(33)씨의 두번째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민음사 발행)은 자기를 보여주지 않고도 완벽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된 21세기의 현실에서 '관계맺기' 혹은 '소통'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앨리스의>
소설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돼 살고 있는 여인 앨리스와 그녀의 옆집에 이사 온 유능한 신세대 번역가 민석의 관계 맺기 양상을 보여준다. 오로지 인터폰으로 이웃들에게 목소리만 들려주는 앨리스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3중 자물쇠를 친 채 10년째 문밖을 나오지 않고 있으며, 필요한 물건들은 문에 달린 신문배달구멍을 통해 옆집 이웃을 시켜 공급받을 뿐이다.
이 여인의 옆집으로 이사 온 민석. 고압적인 목소리로 자신에게 알람시계용 건전지와 세제 같은 생필품 심지어는 생리대까지 사달라고 명령하는 그녀에게 불쾌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심각한 성형부작용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여자일까? 사회나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심각해 사회 전체를 적으로 여기며 증오하고 사는 여자일까?
세속 잡사 모두 잊고 스님처럼 자가수행중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진짜 '미친 여자'일까? 조바심을 견딜 수 없어 "왜 그 따위로 사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사람을 죽였어"라고 대답을 하는 그녀에게 민석은 충격을 받지만, 점점 앨리스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설을 쓰는 일 말고는 일부러 사람을 만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게도 조금은 은둔형 외톨이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은 작가는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비춰질지도 모르지만 단 한 명이라도 그걸 이해한다면 그 방식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앨리스에 대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해도 옆집 여자 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비난하다가 그녀의 삶의 양태는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또 다른 도전"이라는 쪽으로 민식의 인식이 전환되는 과정은, 사이버 공간에서 앨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넘쳐나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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