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해돋이 인상' 속 배가 서서히 움직여 조선 후기 화가 소치 허련의 산수화 속으로 노를 저어간다. 두 그림이 하나로 겹쳐지는가 싶더니 날이 어둑해지면서 남도 풍경 뒤로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빌딩들이 화려한 조명을 비춘다.
그 위로 눈발이 날리자 한자로 씌어진 글씨 위에도 소복이 눈이 쌓인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내 신세계갤러리에서 '빛과 예술의 만남'전을 열고 있는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40)씨의 작품 '모네의 소치의 대화'다.
이씨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동서양의 명화를 새롭게 해석한다. LCD, LED 모니터가 캔버스가 되고, 익숙한 명화들이 그 위에서 움직이고, 변화한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사계절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알록달록한 꽃을 가득 피우는가 싶더니, 눈이 날리는 설산으로 바뀐다. 사이사이 놓인 가로등이 산을 밝힌다.
여덟 폭 병풍처럼 보이는 모니터 위에서는 나비가 날고, 꽃잎이 떨어진다. 동양의 산수화뿐 아니라 클림트나 리히텐슈타인 등 서양 화가들의 그림도 디지털 기술과 만나 숨을 쉰다. '신 모나리자'에서는 모나리자 뒤로 비행기가 날고, 낙하산이 떨어진다. 미소짓던 모나리자도 눈동자를 움직여 그 풍경을 훔쳐본다.
조선대 조소과 출신으로 조각 작업을 하던 이씨는 1997년 한 대학의 애니메이션학과에 강의를 나갔다가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접하면서 영상 작업으로 방향을 돌렸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명화를 소재로 작업,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등을 통해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과거의 화가들도 날아가는 새나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 등 하나의 화폭에 움직임과 변화를 담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라며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꿈을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USB에 영상을 담아 모니터에 구현하는 방식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그의 캔버스는 더 얇아지고, 더 또렷해지고 있다. 요즘은 삼성전자의 모니터를 지원받으면서 LED TV에 작품의 일부를 제공, 전자제품 매장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서울 전시는 7월 12일까지이며, 14~26일 부산 센텀시티점으로 이어진다. (02)310-1921
김지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