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내온 엽서엔
악보만 그려져 있었어
나는 답장을 쓰기로 했지
기억에 없는 저녁을 발음하며
세 번 흉내 내고 싶은 말투로
악보만 그려진 너의 엽서는
음표처럼 홀가분해지고
음악이 멈추지 않았어
사소한 비밀도
강박관념도
잊혀지듯 지나갔어
건반을 누르듯 바람의 맥을 짚고
너의 의도를 파악해갔지
발음이 되기 전의 음표
나는 힘껏 배에 힘을 주고
목청을 돋우며
글쎄 말이야,
너의 후렴구를
● 아!, 엽서를 받아본 적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요새는 어디를 가더라도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 부러 엽서를 사서 누군가에게 보내는 일은 사뭇 귀찮은 일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시를 읽자마자 엽서를 받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드는 것이다.
몇 개의 짧은 문장으로도 보낸 이의 심정을 다 드러내던 세상의 모든 엽서들은 사실, 악보로만 이루어져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음악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짧은 말로 심정을 다 드러낼 수 없었을 터이니.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열어서 오래전에 누군가로부터 받은 엽서들을 읽어본다. 전 세기에 받은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금세기에는 아주 드물게 엽서를 받았던 것 같다. 음악이다,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가 지구의 이 편에서 저 편으로 불렀던 노래…, 나도 시인처럼 '배에 한껏 힘을 주고' '너의 후렴구를' 불러본다. 가버린 시절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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