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최근 중의원을 통과한 장기이식법 개정안이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는 15세 이상 되는 사람이 서면으로 미리 장기이식 의사를 표시하고 가족이 동의한 경우에만 장기이식이 가능하다. 뇌사를 법률적인 사망으로 보는 것도 장기이식 의사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뇌사를 원칙적으로 사망으로 보고, 본인의 거부 의사표시가 없는 한 가족의 동의로 나이 제한 없이 장기 적출을 가능토록 하고 있다.
"뇌사를 죽음으로 볼 수 없다"
장기이식이 아니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법의 통과에 반대하는, 적어도 상당히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뇌사자 가족들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사이타마(埼玉) 시의 생후 1년 7개월인 호노카(帆花)양은 태어나자마자부터 줄곧 숨 쉬는 것은 인공호흡기로, 식사는 관을 통한 영양제 주입으로 대신하고 있다. 호노카양은 출산 때 탯줄이 끊어져 심폐정지 상태였다.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 치료 받고 3일 만에 위험한 상태는 넘겼지만 스스로 호흡할 수가 없었다. 의사는 "뇌파가 평탄하고 뇌 위축도 나타난다. 호흡이나 혈액 순환을 맡은 뇌간 기능을 거의 잃은 상태"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부모는 자신들이 정말 아이를 낳은 것인가 의심할 정도로 쇼크를 받았다. 이러다가 언젠가 인공호흡기를 떼는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노카양은 그 동안 머리카락이, 손톱 발톱이 자랐다. 부모는 "아이가 온 힘을 다해 살려 하고 있다"며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7월 집에 온 호노카양의 얼굴은 한결같이 잠자는 편안한 모습이다. 하지만 부모는 매일 표정이 조금씩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
9세인 미즈호군은 2000년 1세 때 원인불명의 경련을 일으킨 뒤 자발적인 호흡이 멈춰버렸다. 뇌내 혈류도 확인되지 않는다. 소아뇌사 판정기준의 5항목 중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자발적인 호흡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무호흡 테스트' 이외 모든 조건을 채운 장기뇌사 상태로 8년이 지났다. 미즈호군 역시 그 동안 키가 자랐고 체중이 늘었다. 미즈호군의 어머니는 "이 아이는 '연명(延命)'하는 게 아니라 이런 형태의 '삶의 방식'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법원 결정에 따라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이후에도 스스로 숨 쉬며 살아 있는 한국의 김모 할머니 사례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회복 가능성이 5% 미만인 환자를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다고 판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설사 회복 가능성이 없다 하더라도 연명 치료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 살아 있을 사람에 대한 치료 중단이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것인지, 그 판단을 가족이나 법원에 맡겨도 좋은 것인지.
신중에 신중 기해야 할 결정
일본 참의원은 중의원에서 넘어온 장기이식법 개정안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할 모양이다. 야당 의원들은 본인이 장기제공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 한해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는 현재 법의 테두리를 유지토록 하고 내각부에 어린이 뇌사 문제를 검토할 부서를 설치해 1년 동안 다양한 의견을 참고해 뇌사 판정 기준을 마련토록 하는 수정 법안을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뇌사 판정이나 연명치료 중단 결정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학이 발전하고 의학은 진보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생명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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