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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화려한 음악인생·굴곡진 개인사 뒤로 '시대의 아이콘'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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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화려한 음악인생·굴곡진 개인사 뒤로 '시대의 아이콘' 지다

입력
2009.06.2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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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은 그 어떤 스타보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갔다. 1980년대부터 '팝의 황제'로 군림하며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잉태시켰던 그이지만, 아동성추행 혐의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는가 하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괴물' 취급하는 주위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음악이 곧 인생 전부였던 그의 삶은 굴곡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극적이었다.

■ 팝의 황제, 블랙 파워의 상징

잭슨가 9형제의 일곱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6살 때부터 형제들이 만든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Five)의 멤버로 활동했다. 1969년 당시 11살 나이에 그가 고운 미성으로 불렀던 노래 '아 윌 비 데어'는 수십년 동안 불리며 지금도 리메이크되는 명곡이다.

마이클 잭슨은 1975년 흔들리던 잭슨 파이브를 떠나 1978년 세계적 프로듀서 퀸시 존스를 만나며 일대 전기를 맞는다. 그와 함께 만든 디스코 풍의 솔로 앨범 '오프 더 월'은 1,000만 장이 팔렸다. 다시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로부터 작곡을 배우고 제작에 참여해 1982년 내놓은 앨범 '스릴러'는 그를 명실상부한 팝의 황제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 앨범의 대히트곡인 '빌리 진'과 '비트 잇'은 마이클 잭슨의 뒤로 걸어가는 스텝의 춤, 이른바 '문워크'의 세계적 붐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볼거리에 그쳤던 댄스를 직접 음악의 안무로 끌어들인 획기적인 시도였다.

'스릴러' 앨범은 지금까지 무려 1억400만 장이 판매됐다. 후속 앨범 '배드'(1987), '데인저러스'(1991)도 잇달아 히트하면서 그의 전성기는 10년 이상 지속됐다. 그가 지금까지 팔아치운 앨범은 7억5,000만 장에 달한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그는 '듣는 음악'의 개념에서 벗어나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고, 마침 폭발적으로 번져나간 MTV 문화와 맞물려 인기는 더욱 증폭됐다"며 "마이클 잭슨으로 상징되는 흑인 사회의 잠재력이 축적돼 결국 21세기에 이르러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케 한 것"이라는 문화사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 성형중독, 성추행, 재기…

그러나 황제의 임기는 거기까지였을까. 1986년 촬영 중 입은 화상 치료에서 시작된 숱한 성형수술로 그의 검은 피부와 뭉툭한 코는 하얀 피부, 오똑한 코로 변했다. 그가 '성형중독'에 걸렸다는 루머가 퍼져 나갔다. 대부분의 성형수술이 백반증과 화상 치료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 확인됐지만 잭슨은 서서히 수렁으로 빠져든다.

결국 그는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와의 결혼과 파경, 성형수술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와의 재혼과 이혼 등 사생활도 복잡해졌다. 2003년에는 성추행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몇 차례 재기를 시도하지만 대중은 그를 외면했다.

은둔으로 비칠 정도로 세상을 등졌던 그가 2007년 '스릴러' 25주년에 즈음해 신보와 투어 공연을 준비한다는 진행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마침내 올해 초 7월 런던 공연을 시작으로 투어를 갖는다는 계획이 발표했다, 마지막 무대라는 공언과 함께. 그러나 50세, 아직 젊은 황제에게 죽음은 26일(한국시간) 갑작스럽게 찾아와 온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그의 사후에도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5억 달러에 달하는 빚을 남긴 채 떠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유산 배분 문제, 추모 열풍이 그것이다.

▲ 연보

1958년 미 인디애나주 게리 출생

1964년 형제들로 구성된 그룹 '잭슨 파이브' 합류

1979년 첫 솔로 앨범 '오프 더 월' 발표

1982년 '스릴러' 앨범 발표, '팝의 황제'로 불림

1991년 '데인저러스' 앨범 2,100만장 판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구설수

198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1996년 이혼)

1997년 성형수술 때 만난 간호사 데비 로우와 재혼(아이 둘 낳은 후 1999년 이혼)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 재기 앨범 '인빈서블' 실패

2002년 독일 베를린의 호텔에서 막내아들을 발코니 밖으로 흔들다 거센 비판에 직면

2003년 14세 소년 성추행 혐의로 체포영장 발부,경찰에 자수

2005년 재판에서 무죄 평결

2009년 7월 런던에서 콘서트 계획 발표, 티켓 75만장 매진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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