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들어서야 미국에서 엉성하지만 골프를 배워왔다. 그 것을 아는 이들은 요즘도 가끔 술 먹지 말고 같이 골프를 치자고 얘기한다. 내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운동이라고 말하면, 술값과 비교해서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돈을 떠나서 한국에서 골프 치는 것이 풍기는 상징적 이미지도 그렇지만, 특히 노동을 주제로 밥을 먹는 나에게는 여간해선 내키지 않는 일이다.
골프와 '강남 이사'선택
이를테면 노사의 이해가 엇갈리는 정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골프치고 사는 모습이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편하고 자연스럽게 비치지 않을 것 같다. 무엇인가 내가 불편부당한 입장에 서는 것을 방해할 것만 같다. 남들은 그저 운동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나는 이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13년 전 국책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며 명색이 박사인데도 워낙 박봉인지라 한동안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지금은 신의 직장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혜택을 입어 연봉도 민간분야 친구보다 뒤지지 않고 운 좋게 재산가치도 증식되어 사는 모습은 훨씬 윤택해졌다. 내가 사는 신도시의 이웃 중에는 그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강남으로 이사 간 사람들이 많다. 주로 아이들 교육문제를 이유로 강남 행을 결정한 이들에게서 함께 가자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그저 사는 집 문제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싶어도 여전히 강남 행은 이래저래 내키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내가 몸담고 있는 노동 관련 연구자 집단에서도 비록 나와 비슷한 신념으로 골프는 치지 않지만 아이들 교육 문제로 강남 행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강남이 주는 이념적 상징성이 있음에도 아이들 교육문제만큼은 신념과는 괴리된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 아이들 교육은 이념의 차이를 무너뜨린 가장 실용적 도구가 된 것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런 기준들이 개인적 편견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 사는 동안에 이념적인 것은 이념적인 것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행동을 할 때는 이념의 수정을 거치거나 탈 이념의 경지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이들 교육은 이미 상당히 탈 이념의 경지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이념적 좌표와는 관계없이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도리가 된 것이다.
요사이 이념적 갈등과 실용적 노선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나는 기본적인 인간사에 대해선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는 것이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부여한 돈과 권력의 기회를 누리는 것은 실용이 아니라 부지불식간 이념적인 선택이지만, 세상에서 자기에게 부여한 기본적인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실용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내가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은 이념적 선택이지만 강남에 사는 진보적 지인들은 교육이라는 실용적 선택을 한 것이라 믿는다. 또한 내가 그리 선택한 이유와 달리 운동으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건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용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본분과 책임 다해야
세상이 혼란스럽다. 이런 때일수록 먼저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야, 노사, 계층 간에 남의 단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기에 앞서, 남이 왜 그렇게 하는지를 나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아쉽다.
정치인들은 권력보다 국민을 위하는 것이 본분이다. 노사는 생산의 주체로 협력하는 것이 본분이다. 부자는 가난한 이들과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양보하고 가난한 이들은 부자를 이념적으로 재단하지 않는 자세를 갖는 사회, 이것이 내가 요즘 생각하는 실용의 나라이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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