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호러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문자 그대로 '납량' 특집이다. 상영 중인'여고괴담5'를 비롯해 '요가학원' '불신지옥' '블러디 발렌타인' 등 공포영화와 MBC '혼', KBS '전설의 고향' 등 드라마가 올해도 어김없이 7, 8월을 장악하겠다며 줄지어 대기 중이다.
억울한 원혼, 섬뜩한 죽음, 일상과 정상을 일탈한 것에서 풍겨나오는 이 서늘한 공포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또 어떻게 즐겨야 할까. 여름철 체감온도를 낮춰줄 공포의 현장, 그리고 최고의 호러 작품을 찾아본다.
■ 공포, 너무나 현실적인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바닥에 누워있다. 분명 등이 보이는데 얼굴은 위를 보고 있다. 눈을 뜬 채로, 입가에는 피가 맺혀있다. 옷 여기저기에도 피가 묻어있다.
"제일 급한 건 불에 탄 시체야. 여자 얼굴은 가죽을 찌그러뜨리면 돼. 남자는 팔다리를 잘라버려."
살벌하다.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아니다. 8월 방영되는 MBC 드라마 '혼'의 특수분장을 맡은 홍기천 차장의 작업실. 공사장에서 절반만 불에 탄 시신과 소파에서 살해당한 후 전신이 탄 시신, 그리고 손이 묶인 채 칼로 난자당한 시체를 만들어 달라는 제작진의 주문으로 특수분장팀은 분주하다.
영화와 드라마, 공연에 이르기까지 여름은 호러 장르의 계절이다. 일상과 정상을 벗어난 그 섬뜩함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공포물 제작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특수분장에 있다. 터진 상처를 그려넣는 것부터 잘린 신체나 시체 인형('더미'라고 부른다)을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이들이 특수분장팀이다.
영화가의 대표적 특수분장회사인 LCM의 이창만 실장은 요즘 8월 개봉하는 공포영화 '요가학원'에 등장할,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인형 만들기에 매달렸다. 이러한 더미 하나를 만드는 데에 드는 비용은 1,000만~2,000만원, 시간은 한 달이 걸린다.
배우에게 석고를 발라 본을 뜨고, 그것을 수정한 뒤 실리콘 재료를 부어 몸체를 만들고, 머리카락 눈썹 눈알 등을 심은 뒤 채색을 한다. '요가학원'의 경우 외상은 없는 대신 뼈가 꺾여야 했기에 몸체 속에 파이프로 만들어진 뼈대, 관절을 넣었다. 이렇게 완성된 인형의 관절을 심하게 꺾어서 기이한 자세를 연출했다.
관절을 넣는 정도는 약과다. 최전방 경계초소(GP)를 배경으로 의문의 죽음을 수사하는 미스터리 영화 'GP506'(2007)에서는 대검에 찔린 손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장면을 찍기 위해 손 속에 무선으로 원격조정되는 기계장치와 피를 뿜어주는 관을 넣었다. 대검을 내리찍는 타이밍에 맞춰서 밸브를 열어 피를 뿜고 원격 조정기로 손을 움직인다.
피칠이나 튀어나온 뼈는 단순한 작업에 속한다. 자연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이 품이 더 많이 들고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가령 짧은머리 남자 인형을 만들려면 일주일 동안 에누리없이 머리카락을 5만개쯤 심어야 한다(긴 머리는 가발이 가능하다).
배우를 뚱뚱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가짜 살 역할을 하는 실리콘과 진짜 피부 사이를 표나지 않게 메꾸는 특수분장에는 2~3명이 2~3시간 동안 매달려야 한다.
공포물에 빠질 수 없는 시뻘건 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홍기천 차장은 "상황에 따라 어떤 색의 피를 만들지 달라진다"고 말한다. "수술 장면에 쓰는 피는 주로 동맥과 정맥에서 나오기 때문에 글리세린과 식용 색소를 많이 써서 맑은 색깔을 만들어요. 하지만 살해당하거나 전쟁터에서 죽은 시신에 쓸 때는 글리세린에 젤과 식용색소, 커피를 섞어 거무튀튀한 색으로 만들죠. 그래야 무겁고 음침한 느낌이 나거든요."
MBC 드라마 'M'(1994)에서 귀신에 씌었을 때 녹색 눈이 이글거리던 심은하를 기억할 것이다. '혼'에서는 악령에 들린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눈이 충혈된 것처럼 보이는 특수렌즈를 사용한다.
눈동자만이 아니라 눈 전체를 다 덮는 이 렌즈는 가격이 100만원대로 외국 배우들 중에는 눈에 마취를 하고 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불편하다. 하지만 특수효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한다.
■ 공포를 만드는 이들
특수분장사는 수련의 못지않게 해부학 도감을 공부하고, 수사관 못지않게 사건사고 사진을 참고한다. 내장과 뼈가 드러나 보이는 더미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다. 총기 칼 둔기 등 무기에 따라, 차량의 종류와 충돌속도에 따라 시신이 얼마나 망가지는지도 알아야 한다.
이런 건 수사관이나 볼 수 있는 자료 아닐까? "다 구해 보는 수가 있습니다." 이창만 실장의 말이다. 특수분장사들은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는다. 홍기천 차장은 교통사고만 나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지금까지 직접 본 시신만 80여 구.
거꾸로 그들이 만든 인형이 사람과 너무 똑같아서 의학 연구에 사용되기도 한다. MBC 의학드라마 '뉴 하트'(2007)에서 홍 차장이 만?내장에 혈관까지 다 갖춘 더미는 의사들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의 요청을 받은 MBC는 수술로봇 다빈치의 수술연습용으로 촬영이 끝난 인형을 기증했다.
■ "만든 나도 무섭다"
공포물 제작진에게 두려운 것은 "무섭게 하려고 만든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고안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비주얼 효과는 더욱 극단적이 되며, 기이한 음향을 만드느라 생고생을 한다. 그래 놓고 정작 배우나 스태프 스스로 "도저히 못하겠다"고 내빼는 경우가 없지않다.
'GP506'에서 공수창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강도 높은 특수분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하반신이 잘린 병사가 내장을 흘리며 기어가는 장면의 특수분장이 너무나 징그러워 손도 대지 못한 채 촬영을 피했다. '구타유발자들'(2006)의 원신연 감독도 쥐를 찢어먹는 장면을 찍은 뒤 "너무 리얼해서" 빼버렸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특수분장이 삭제되면 특수분장사들은 자식을 잃은 듯 가슴이 아프다. 극장 안에서 15명이 죽는 내용의 영화 '씨어터'(2000)에서 눈이 찔려 죽고, 혀가 잘려 죽는 등 갖가지 특수효과를 냈던 이창만 실장은 15명의 살해장면이 모두 심의에 걸려 삭제된 후 "환장했던" 경험이 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무삭제판이 그나마 위안이다.
현재 상영 중인 '여고괴담 5'에서 배우들이 가장 무서웠던 것은 실제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자살하려고 옥상 난간에 올라간 여학생들의 발과 저 아래 땅바닥이 위에서 내려다보듯 비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화면 합성이 아니라 안전줄을 매단 채 실제 난간에 올랐던 배우들은 "조금만 앞으로 다가서라"는 감독의 지시에 조금도 발을 떼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 CG 사용은 투신한 장경아의 얼굴에서 피가 번져나오는 장면이 유일하다. 사물함 속에 피를 흘리며 '구겨져' 있던 학생도 인형이 아니라 실제 배우의 연기다.
배우 중에서도 유독 공포물을 못 견디는 이가 있게 마련. '요가학원'에서 금기를 어겨 온몸이 퉁퉁 붓는 장면을 찍었던 조은지는 특수분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자기 모습에 스스로 충격을 받을까봐 분장하는 내내 분장실 벽의 모든 거울을 덮었고 자기 손조차 보지 않았다.
■ 단순해서 더 무섭다
그러나 꼭 고가의 특수분장과 CG가 있어야만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칠고 단순해서 오히려 더 무섭기도 하다. 비디오판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 '주온' 1편(1999)는 CG 없는 단순한 효과여서 더 무섭다는 평이다.
'여고괴담' 1편(1998)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최강희의 복도 신도 사실은 예산의 한계가 연출한 장면이다. 박기형 감독은 애초에 긴 복도 끝에서 앞까지 한번에 최강희를 앞당겨 찍으려 했다. 하지만 조명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몇 차례에 나눠 찍었다.
"관객들이 웃지나 않을까 못내 걱정이 돼, 시사회 반응이 정 안 좋으면 다시 찍는다는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큰 스크린에서 보니까 반응이 기대보다 몇 배나 컸죠. 지금까지 제일 무서운 장면으로 꼽히니까요."여고괴담 1편과 5편을 기획한 김복근 씨네2000 제작이사의 말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 공포의 이면, 짜릿한 쾌락
공포영화를 보는 심리의 아이러니. 비명을 지르고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왜 손가락 사이로 엿보는가?
공포는 일종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진짜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한.
호러물을 보는 관객들은 긴장했다가 이완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을 한다. 인체는 공포의 자극이 있으면 뇌하수체를 자극해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때문에 신체적 변화와 함께 짜릿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진짜 위험이 아니라면 그래서 공포의 감정은 쾌락에 가깝다. 터져나오는 비명은 즐거운 비명이다. 놀이기구와 비슷한 셈이다. 특히 자극을 추구하는 외향적 성격의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즐긴다.
공포감정이란 생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신체에 울리는 경계경보다. 위협이 되는 자극을 눈이나 귀로 감지해 뇌에 전달되면 뇌의 변연계는 그 밑에 있는 시상하부에 자극을 전달하고, 시상하부는 다시 뇌하수체에 신호를 보내 코티졸 호르몬을 분비하면서 자율신경계통을 자극한다.
자율신경계의 반사작용에 따라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온몸 구석구석에 반응이 전해진다. 싸우거나 도망치기 위해 몸을 긴장시키고, 에너지 생산에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호흡이 빨라지고, 산소를 온 몸에 전달하기 위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이다.
공포물을 보면 서늘함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신체 반응의 결과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에너지 방출을 줄이려고 피부혈관이 수축되는데, 그 결과 핏기가 가시고 땀샘이 자극돼 식은땀이 나며 근육 수축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추운 날씨에 시상하부가 체온을 조절하려 할 때도 비슷한 신체변화를 야기하는데, 공포에 의한 반응에 의해서도 정말 추위를 느낀다.
낯설고 압도적이고 생존에 위협적인 대상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인류가 진화과정에서 터득한 일반적인 반응이다. 뱀이나 거미에 대한 공포가 흔한 이유도 인간이 맹독을 피하도록 한 중요한 기제였다. 젊은 여성에게 보다 많은 원인 모를 공포증이 신석기시대에 빈발했던 여성을 둘러싼 전쟁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인류학적 연구도 있다.
여성에게 자연이 아닌 인간이 공포의 대상으로 부상한 것이 이 시기라는 설명이다. 또한 공포는 개인의 학습에 따라 형성되기에 공포의 대상은 제각각이다. 경험에 따라 다른 사람에겐 귀여운 벌레나 새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가짜 위협으로서의 공포'를 즐기는 심리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현실에서 그런 피 튀기는 상황을 재연하려 한다면 범죄적 성향이겠지만 말이다.
●도움말 전홍진ㆍ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문의
김희원기자
■ 강심장도 머리 쭈뼛 그 영화, 심장 쿵쿵 그 소설
온몸의 말초신경이 하늘 끝까지 솟구치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가. 바짝바짝 조여드는 긴장과 그 이후 맥 풀리는 안도감을 즐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기 공포물을 즐겨라. 가벼운 상업 장르라고 누가 외면하랴. 공포마저 예술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1년 내내 공포와 판타지에 빠져 사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프로그래머 권용민, 박진형씨가 추천하는 최고의 공포영화, 공포소설 작가 김종일, 이종호씨와 신예 작가 윤이형씨가 뽑은 최고의 공포소설을 소개한다.
● '주온' 비디오판(1999)
권용민 프로그래머가 "밤에 보고 정말 무서워서 머리카락이 쭈뼛 섰던 영화"로 꼽는 것이 바로 '주온' 시리즈의 원본인 비디오판 1편이다. '주온'의 공포는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압도하는 시각ㆍ청각적 이미지다. 원혼을 품은 귀신 가야코가 엎드린 자세로 몸을 기이하게 비틀며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 가야코의 집에 살게 된 여학생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을 때의 아래턱이 없는 피투성이 얼굴 등은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권씨는 "'주온' 이전에도 많은 귀신영화, 피 튀기는 슬래셔, 철학적 의미를 담은 공포영화가 있었지만 '주온'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무서운 순간을 감각적으로 만들어낸 점에서 새 장을 개척한 공포영화"라며 "극장판이 잇따라 만들어지며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효과를 입증했다"고 말한다.
● '캐리'(1976)
매년 여름 개봉되는 상업적인 공포영화의 대표적 모델이다. 주인공 캐리가 고교 졸업파티에서 돼지 피를 뒤집어쓰는 장면이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박진형씨는 "캐리가 샤워실에서 목욕을 하다가 첫 생리를 맞는 장면은 처음의 에로틱한 영상에서 무서운 음향과 함께 공포로 바뀌는데, 가장 무서웠던 장면"이라고 말한다.
왕따였던 캐리가 복수를 하는 이 영화는 소녀를 공포스러운 존재로 부각시킨 영화의 원조로 꼽을 만하다. 박씨는 "공포영화는 사회적 타자를 괴물, 에일리언, 살인마 등의 가면을 씌워 무서운 대상으로 삼아왔는데 '캐리'는 어린애도 아니고 성숙한 여성도 아닌 사춘기 소녀를 그 대상으로 부각시킨 대표작"이라며 "이후 '여고괴담' 등 소녀가 살인마가 되는 영화들이 일반화했다"고 말한다.
● '샤이닝'(1980)
고립된 호텔 안에서 미쳐가는 주인공(잭 니콜슨)을 보여주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고전.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영화의 모든 표현수단이 동원됐다는 점에서 '공포영화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잭 니콜슨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 아들을 죽이기 위해 ?아가는 장면. 큐브릭 감독은 스테디 캠(움직이면서 흔들림 없는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을 써서 긴박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유려한 화면에 담아 역설적으로 최고의 공포를 자아냈다.
이 신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스테디 캠이 최초로 사용된 영화가 '샤이닝'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스테디 캠은 당시 최신 기술이긴 했지만 이전 영화에서도 쓰였다. 박진형씨는 "이 영화는 호러라는 장르는 '대중적'이지만 그 안에서 공포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얼마든지 '작가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명작"이라고 극찬한다.
● '하녀'(1960)
김기영 감독의 고전 '하녀'가 공포영화였던가? 의외라고 할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그로테스크한 하녀(이은심)의 이미지, 가족을 파탄내는 구조와 음산한 분위기 등은 여느 호러물 못지않다는 것이 박진형씨가 이 영화를 꼽은 이유다.
하녀가 벽장 속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 쳐다보는 장면, 아내의 밥에 쥐약을 타는 장면, 혼자 있는 남편을 유혹하는 장면 등의 이미지가 섬뜩하기 그지없다는 설명. 박씨는 "공포영화는 싸구려 상업영화에 불과하다는 통념을 뒤집고,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 '장화, 홍련'(2003)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역시 '주온'과 비슷하게 불편한 움직임, 움직임과 소리의 불협화음 등으로 공포를 자아낸 영화라고 권용민씨는 말한다. 임수정이 꿈을 꿀 때 침대 밑에서 귀신이 올라오면서 예상치 못하게 훌쩍 뛰어오르는 장면이나, 치마 밑으로 손이 내려오는 장면이 그런 예다.
권씨는 "사실 이 영화는 시나리오의 반전이 복잡해서 동생(문근영)이 이미 죽은 존재라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해도와 무관하게 무서운 장면으로 객석에서 그토록 많은 비명이 나온 영화가 없었다"고 말한다.
● '양들의 침묵'(1991)
앤서니 홉킨스의 희대의 살인마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 권용민씨는 "사람들이 살면서 일반적으로 두려워하는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는 공포물"이라고 평한다.
가령 체구가 작은 여자가 덩치 큰 남자와 밀폐된 공간 안에 함께 있는 것, 어두운 곳에서 나는 상대를 볼 수 없지만 상대는 나를 지켜보는 것, 어두컴컴한 복도를 혼자 걸어가는 것 등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포의 경험들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비단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이 아니라도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무서워하는 소리, 공간, 상황이 정말 무섭다고 느껴지는 영화다.
● 나는 전설이다 / 리처드 매드슨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나는 전설이다> 를 읽었기 때문"라고 말할 정도로 이 소설은 수많은 공포 마니아와 대중의 격찬을 받은 작품이다. 2007년에는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는>
지구에 핵과 세균 전쟁이라는 대재앙이 닥치고, 인류는 낮을 싫어하고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돌연변이 흡혈귀로 변한다.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 네빌은 낮에는 점점 줄어드는 생필품을 구하러 다니거나 잠자는 흡혈귀를 죽이고, 밤에는 흡혈귀와 싸운다. 작가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1950년대 미국 중산층 남성이 겪은 전후의 일상의 공포를 묘사했다.
공포소설 <이프> <귀신전> 의 작가 이종호씨는 "심리적 공포에 치중한 소설이지만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귀신전> 이프>
●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시리즈 / 김종일 등
한국의 주목받는 공포 스릴러 작가 10명의 단편을 엮은 작품집이다. 2006년부터 매년 한 권씩 세 권이 나왔고 올 여름 4권이 나올 예정이다. 이종호씨는 "3권 모두 재판이 넘게 찍을 넘을 정도로 호평을 받아 국내 공포문학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공포소설임에도 토막살인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2006년 출간 당시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19세 미만 구독불가 도서로 판정받았다. 때문에 제2권은 전권보다 폭력성을 억제해 19세 딱지를 떼고 출간했다. 공포소설 하면 주로 외국 작가를 떠올리는 현실에서 한국의 정서를 녹여내 한국적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 미저리 / 스티븐 킹
로브 라이너 감독, 케시 베이츠, 제임스 칸 주연의 영화 '미저리'를 봤다고 해서 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반쪽짜리 '미저리'만 본 셈이다. 소설 <미저리> 는 무시무시하고 긴장되고 심지어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미저리>
공포소설 <손톱> 의 작가 김종일씨는 "공포소설이 독자에게 선사할 수 있는 모든 미덕을 두루 갖춘 걸작"이라며 "영화에서 해머로 발목을 내리찍는 것으로 순화된 '그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값어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손톱>
● 피의 책 / 클라이브 바커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 흥건한 피가 수록작 전체를 적시지만, 그 와중에도 각 소설마다 독특한 개성이 살아 숨쉰다. 스티븐 킹에게서 '공포의 미래'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영국 판타지문학상과 세계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완성도 있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공포보다는 원시적이면서도 고전적인 공포를 느끼게 해 색다른 느낌이 든다. 김종일씨는 "6편 중에서도 비니 존스 주연의 영화로 개봉했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 기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언덕에, 두 도시'를 특히 권한다"고 말했다.
● 망량의 상자 / 교고쿠 나츠히코
나오키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의 작품으로 휴가지에서 읽을 만하다. 현장에서 단서를 수집하는 고전적인 탐정과 달리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 교고쿠도가 주인공이다.
늘 시무룩한 얼굴로 어려운 책만 읽는 그는 장서가 넘쳐나서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고서점 주인.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탐정 같지 않은 탐정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것보다 교고쿠도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전작 <우부메의 여름> 을 먼저 읽고 보면 재미 두 배. 우부메의>
● 임신 캘린더 / 오가와 요코
여성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인 임신을 다른 방향에서 섬뜩하게 접근한 작품이다.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됐는데 다소 난해하면서도 복잡한 심리 묘사가 특징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일본 여성 작가로 꼽히는 오가와 요코의 출세작이자,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표제작은 언니의 임신을 지켜보며 미묘한 심리 변화를 일으키는 여동생의 모습을 일기 형식으로 담았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지만 현실로 끌어내기는 꺼림칙했던 이야기다. 소설가 윤이형씨는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시선이 느껴져 소름이 돋는 듯한 으스스함을 잘 재현한 작품"이라며 "일상 속의 은근한 공포와 소설적으로 완벽한 구성미가 느껴진다"고 추천 이유를 말했다.
김희원 기자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