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선고 전 구속기간(미결구금일수)이 형기(刑期)에 모두 반영되지 않아 선고 형량보다 더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하는 일이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5일 판사의 재량에 따라 판결선고 전의 구금일수 중 전부 또는 일부를 형기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한 형법 제57조 1항에 대해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유죄판결 확정 시 미결구금일수 중 일부만 산입된다면 사실상 구금기간이 (선고형량보다) 늘어나게 돼, 불구속 상태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돼 자유형을 집행받는 피고인에 비해 다시 한번 불리한 차별을 받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해당 조항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및 적법절차의 원칙과 신체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불구속재판의 원칙도 적용 받지 못해 권리를 침해 받는데, 여기에 더해 구속기간도 형기에 포함하지 않게 되면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신체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가중된다는 것이 헌재의 설명이다.
헌재는 또 "구속 피고인이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거나 부당한 소송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미결구금기간 중 일부를 형기에 산입하지 않는 것은 처벌되지 않는 소송상의 태도에 대해 형벌적 요소를 도입해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서 적법절차의 원칙 및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조항은 상소 남발을 방지하고 재판지연을 줄이려는 취지에서 도입됐으나, 재판지연의 주범인 불구속 피고인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반면 고의 재판지연이 어려운 구속 피고인들만 불이익을 받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헌법소원을 낸 신모씨의 경우 항소심의 미결구금일수 58일 중 28일만 본형에 산입됐고, 대법원 상고심의 미결구금일수 105일 중 100일만 본형에 산입됐다. 결과적으로 선고형량보다 35일간 더 수감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법무부와 대검은 모든 재소자에 대해 미결구금일수를 전부 산입해 형기를 다시 산정하도록 했다. 그 결과 형기가 이미 지난 재소자는 즉시 석방하기로 했다.
원칙적으로 헌재 결정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지만, 인권보장 측면에서 현재 수감중인 재소자에게는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형을 마치고 석방된 사람들은 피해를 구제를 받을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형벌에 관한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 나면 과거에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미결구금을 형벌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재심을 거쳐 미결구금일수 전체 산입 판결을 받더라도 이미 형을 마쳐 실익이 없게 된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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