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대교의 박남열 감독은 요즘 싱글벙글이다. 올해 출범한 WK리그를 앞두고 간판 골잡이 박희영과 차연희(이상 바드 노이에나르)를 독일 분데스리가로 떠나보낸 대교는 '예상대로' 시즌 초반 2무에 그치며 고전했다. 그러나 브라질 출신 골잡이 쁘레치냐(34)가 가세하자마자 확 달라졌다.
한국 여자축구 용병 1호인 쁘레치냐는 6경기에서 2골2도움으로 펄펄 날았고, 그 동안 5승(1패)을 쓸어 담은 대교는 한 경기를 더 치른 1위 현대제철을 승점 3점차로 쫓으며 선두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4 아테네올림픽 당시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골을 터뜨린 '올림픽 스타' 쁘레치냐가 대교의 '우승 청부사'로 거듭날 태세다.
■ 나이는 30대, 마음은 10대
축구는 거친 경기다. 상대의 무시무시한 태클은 물론이고 몸을 사리지 않고 공중볼 싸움도 벌여야 한다. 쁘레치냐가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건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웨이트트레이닝을 거르는 법이 없고 기름기 많은 음식은 일절 손대지 않는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벗어난 쁘레치냐는 웃음 많고 눈물 많은, 천상 소녀다.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는 그는 동료들 이름을 모두 외웠냐는 질문에 까르르 웃음부터 터트린다. 너무 어렵지만 그래도 몇 명은 외웠다더니 누구인지는 비밀이라고 했다. 나머지를 생각한 배려다.
워낙 유쾌한 성격이지만 3개월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가 줄곧 힘이 되어줬다. 언제나 나를 가장 자랑스런 딸로 생각했다. 어디서든 나를 응원하고 계실 거다"고 울먹인다. 쁘레치냐의 미소는 슬픔을 극복한 것이기에 더욱 빛났다.
■ 축구는 램프의 지니
말만 들으면 프로경력 20년차가 아니라 갓 프로에 입문한 새내기 같다.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라운드에서 축구에 대한 내 모든 사랑을 쏟아내고 싶다." 물론 그만한 이유는 다 있다.
3남2녀 중 막내인 쁘레치냐는 오빠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축구를 배웠다. 7살에 축구를 시작해 14살 브라질 프로리그에 첫 발을 내딛기 전까지 남자들과 공을 찼다. 유년시절 단순한 놀이였던 축구는 어느덧 쁘레치냐의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됐다. "축구를 통해 모든 소원이 이뤄졌다. 집도 샀고, 형편이 어려운 가족도 도와줬다"고 고백한다.
브라질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전화통만 잡으면 눈물부터 쏟아내는 '울보'가 2001년부터 미국, 일본 등을 전전하며 해외를 떠돌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는 체력이 좋고 스피드가 빠르다.
특히 승부욕과 투지가 좋다"던 쁘레치냐는 "브라질에서 바스코다가마 시절 우승을 많이 해봤다. 하지만 미국에선 한번도 못했고, 일본에선 2부리그 정상을 한번 밟았을 뿐이다. 대교에서는 꼭 우승해보고 싶다"고 낯선 한국에서 또 하나의 소원을 꿈꾸기 시작했다.
■ 펠레에서 쁘레치냐로
쁘레치냐의 본명은 델마 곤칼베스다. 하지만 1989년 브라질 프로리그 멘다하에 입단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펠레'로 통했다. 157㎝의 단신이라는 약점에도 브라질 선수 특유의 탄력과 화려한 기술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공교롭게도 소속된 팀에는 또 한명의 '펠레'가 있었다. 그래서 팀 동료들이 새로 붙여준 별명이 '쁘레치냐', 포르투갈어로 '작은 흑인'이라는 뜻이다. 이제 쁘레치냐는 가족조차 부르는 이름이 됐다.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오고 간다. 성공사례로 기억되는 용병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까지만 본다면 쁘레치냐는 성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쁘레치냐의 목표는 눈에 보이는 영예가 아니다.
"최우수선수(MVP) 같은 건 진짜로 관심이 없어요. 다만 팀을 최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체력이 받쳐주는 한 계속 뛰고 싶어요."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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