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를 떠올리면 몸이 먼저 긴장하곤 했다. 20대 초반의 청춘을 군 생활로 보낸 곳이라 그렇다. 처음 신병의 눈으로 둘러본 양구의 땅은 그저 갑갑하기만 했다. 몇 겹의 산줄기가 두르고 또 두른 것도 모자라 파로호와 소양호의 큰 물로 또 가로막힌 육지 속의 '고도(孤島)'였다.
긴 시간이 지나 홀가분하게 다시 찾으니 양구의 모든 게 새로웠다. 소양강댐에서 양구선착장을 오가던 뱃길은 몇 년 전 끊어졌고, 소양호변의 굴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던 46번 국도도 추곡, 수인터널 등의 개통으로 반듯해지고 빨라졌다.
조만간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뚫리고 46번 국도의 마지막 꼬부랑길인 배후령에 터널만 뚫리면 양구와 서울을 잇는 길이 1시간 30분대로 줄어든다고 한다. 아득하기만 했던 양구가 친근한 이웃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번 양구 여행의 목적지는 민통선 안의 비경, 두타연이다. 양구읍 관광안내소에서 만난 이창순 관광해설사가 두타연까지 가는 차 안에서 한껏 양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양구의 주민은 2만 2,000명 정도. 군인까지 합치면 겨우 5만이 되는 작은 고장이다.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많은 곳이다. 그는 "기업ㆍ공장ㆍ위락시설 등 공해 유발업소가 하나도 없는 청정지역이기에 '양구에 오시면 10년은 젊어집니다'란 양구군 슬로건이 거짓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두타연은 6년 전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방산면 고방산리 초입에 있던 민통선 통제 군초소가 1년 전에 비해 1km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민간인 출입통제 지역이 그만큼 줄었다는 이야기다. 두타연 들어가는 비포장 길 양 옆의 논들은 작년만 해도 민통선 안이라 농민들도 매번 군의 허가를 받아 '출입 영농'을 했던 곳이다. 민통선의 후퇴로 이젠 농부와 논이 자유를 찾았다.
두타연 가는 길 옆으론 맑은 물줄기가 내내 함께한다. 북녘에서 흘러내려온 수입천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열목어가 서식한다는 물줄기다. 이창순씨는 "이 물은 1급수보다 높은 특급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군초소를 지나 한참을 달리던 차량이 멈췄다. 주차장 밖 숲속에서 굵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맨흙이 드러난 길과 초록 숲의 경계엔 언제나 철조망이 둘렀고, 철조망 중간 중간엔 빨간색 역삼각형 표지판이 붙어 있다. 거기에 쓰여진 '지뢰'란 두 글자가 몸을 진저리치게 한다.
두타연 폭포의 물길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휘돌아 떨어지는 물줄기의 세기는 만만치 않다. 그 거센 물을 받아내는 검푸른 물웅덩이의 둘레는 50m에 이른다. 커다란 소와 짧지만 강한 폭포가 근사한 대조를 이룬다. 폭포 바로 옆에는 커다란 동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입구의 지름이 10m를 넘고 깊이도 20m가 더 된다.
두타연이란 이름은 인근에 두타사란 사찰이 있어서 붙었다고 한다. 두타사는 참혹한 전쟁을 치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양구군은 최근 두타연 주위를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생태탐방로를 조성했다. 폭포에서 50m 아래에 수입천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지난 달 개통된 다리다. 물길 건너편으로 이어진 탐방로는 다시 두타연 소를 끼고 올라 폭포 위의 전망대로 안내한다. 상류쪽으로 이어진 탐방로는 돌다리를 건너 두타연 소로 내려온다. 탐방로 전체 길이는 470m다.
두타연에서 나와 다시 비포장 도로에 섰다. 조금만 오르면 양구전적위령비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양구예비취수장 건물을 만난다. 일반인이 갈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이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도로는 부산과 금강산을 잇는 31번 국도다. 분단 전 양구 주민들은 수입면의 장을 보러 이 길을 다녔다고 한다. 여기서 내금강의 장안사까지는 2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두타연을 트레킹하려면 최소 3일 전에 양구군 경제관광과(033-480-2278)에 출입허가 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방문하는 날에 양구읍 양구군 관광안내소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나 함께 출발한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이다. 월요일은 쉰다.
양구는 그림 경매 때마다 최고가를 경신하는 화가 박수근이 태어난 곳이다. 양구읍 정림리 야트막한 산자락, 화가가 태어난 집 터에 2005년 박수근 미술관이 들어섰다. 낮고 길게 이어진 미술관의 첫 인상은 요새나 성곽 같은 느낌이다. 돌을 투박하게 붙인 벽면은 박수근 그림의 두텁고 질박한 질감를 닮았다.
본관에는 스케치 작품이나 유화 등 화가의 진본 그림들이 걸려 있다. 별관은 기획전시실과 레지던스 스튜디오가 있다. 레지던스 스튜디오는 젊은 작가들이 맘 편히 머물면서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다. 박수근의 음덕이다. 입장료 1,000원.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양구=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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