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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가는 꼭 존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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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가는 꼭 존재해야 하는가?

입력
2009.06.2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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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필요할까.

지구촌 저 너머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시위진압 경찰의 총격에 쓰러진 여대생 네다의 사진을 보면서 떠오른 의문이다.

비록 한 쪽 눈은 피로 범벅이 됐지만 다른 한쪽 눈망울은 더 없이 크고 아름다웠다. 27살, 정말 꽃다운 나이다.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제 자매들, 아마도 사랑하는 연인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얼마나 비통했을까.

도대체 이란 정부는 무엇 때문에 네다를 향해 총을 쏴야 했을까.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을 위해서?

국가의 안위, 침묵하는 다수…우리도 과거 15, 6년 그 이전에 많이 들었고 요즘에도 자주 듣는 참 편한 말이다. 그럴 듯한 얘기다. 그러나 이란 정부가 네다의 가족에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했다는 외신을 보면서 과연 이런 정부, 이런 국가가 필요할까 라는 우문(愚問)이 다시 떠오른다.

어떤 이는 "20년 이상 정치부 기자를 해놓고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느냐"고 힐난할 것이다. 또 다른 이는 고색창연한 토마스 홉스(1588~1679)의 <리바이어던> (Leviathan)을 인용하면서 "국가나 정부가 없으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극도의 혼돈이 빚어질 것"이라고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무정부적 상황이 빚어내는 혼돈은 치명적인 해악이기 때문에 이를 제어할 국가나 정부가 필요하다. 다 아는 얘기다.

그렇다고 질서유지와 다수의 안위라는 명분이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자기 국민을 향해 총질을 해대는 권리까지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국가나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왜냐? 정당성도 없고,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항의한다면, 진상조사위를 공정하게 구성, 대선 과정을 면밀히 따져보고 재검표를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마무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대선은 공정했다"고 외치고 있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본다. 근대 이후 약점은 있지만 그나마 합리적인 정치체제로 민주주의는 정착됐다. 그 핵심원리는 국가나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을 위임받았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지만 다들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란만 그런 게 아니다.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 정치도 그렇다.

요즘 여권 핵심부에서는 법질서 확립이라든지 정면돌파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논리이지만 그게 집권자를 위한, 또는 특정세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 정당성을 잃게 된다.

다시 우문을 던져보자. 왜 권력을 잡는가. 국민을 더 잘 살게 하고, 더욱 자유롭게 하고, 더욱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다. 국민은 누구인가. 강남에 살든, 달동네에 살든, 표를 찍었든, 안 찍었든 모두가 국민이다. 그들이 권력을 잠시 맡겨 놓은 진짜 주인이다.

행여 이를 망각하고 정당한 비판이나 문제제기마저 국가의 안위나 다수를 위태롭게 하는 '공공의 적'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경계할 일이다. 그렇다고 무정부적 방임을 하자는 게 아니다. '힘'을 사용할 때, 정면돌파를 할 때 신중, 또 신중하자는 것이다. 사족을 붙인다면,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지도 않은 사법권력은 그 판단과 결정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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