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당시 육군 소위이던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향년 74세로 경교장에서 서거하였다. 오늘로 60주기(周忌)가 된다. 백범은 임시정부를 마지막까지 지키면서 대한민국의 원형을 구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 했던 설계사였다. 그의 죽음은 그 설계의 파괴이자 좌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원형 설계
그가 임시정부 시절부터 그린 대한민국의 설계도는 단순한 것이었다. "소련식(…) 공산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은 싫다. 미국식(…) 하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친선을 촉진하면서, 삼천만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자주독립의 조국을 원하는 것이다. 반쪽의 조국이 아니라 통일된 조국을 원한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 볼 때, 백범과 임시정부가 그렸던 대한민국의 설계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여전히 확고하지 않으며, 경제적 불평등과 교육의 기회 불균등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남북의 대립은 이제 말이 아닌 군사적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새삼 백범이 그린 대한민국의 설계 원형을 되새기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백범의 '협상통일' 원칙을 다시 현실에 구현해야 한다. 백범이 가졌던 확고한 원칙은 상대를 압박하고 무력을 증강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오늘 삼천만이 갈망하는 것은 외국의 간섭이 없이, 동족의 유혈이 없이, 오직 평화로운 민주방법에 의하여 조국의 통일 독립을 완수하는 것, (…)누가 남북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든 평화로운 남북협상의 경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오늘의 현실은 '협상통일'의 길에서 한참 비껴서 있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의 강경 드라이브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완전히 저버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흡수통일을 명문화하여 상대를 더욱 강경으로 몰고 가는 것은 대결만 심화시킬 뿐이다.
백범의 나라 설계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또 하나의 기치는 '평등치국'이었다. 물론 그가 내세운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이란 이념을 오늘 우리가 기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사회의 서민들이 겪고 있는 눈물과 좌절을 더 이상 정치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사회적 약자를 돕고 생존을 위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현대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의 이미지는 백범이 소망하고 그린 나라 설계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저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고자 하며, 얼마나 노력했으며, 얼마만큼 왔는가?
'협상통일ㆍ평등치국'의 꿈
우리가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으려 한다면, 먼저 백범의 나라 설계를 되새기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또한 우리 정치가 잘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싶다면, 그것 역시 백범에게 답이 있다.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설계 원형이 바로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협상통일'과 '평등치국'이었다. 백범이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포함한 대한민국 90년 역사의 원형이자 아직도 못다 이룬 우리들의 현재진행형 꿈이다.
이승환 민화협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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