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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태연한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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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태연한 척

입력
2009.06.2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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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일행을 기다리게 하면서까지 구두가게의 진열장에 눈도장을 찍었다. 사고 싶은 구두는 팔리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굽이 10센티인 이른바 '킬힐' 샌들인데 그 아름다움에 끌리는 만큼 그 가공할 고통도 덩달아 떠올라 선뜻 사지는 못한다. 지난 여름 내내 멋을 내느라 하이힐을 신었다. 태연한 척 두 다리를 쭉쭉 내뻗고 걸었지만 울퉁불퉁 솟아나온 보도 블록에 발이 채일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 높고 가느다란 굽이 맨홀의 구멍에 빠지기도 했다. 머릿속은 온통 빨리 구두를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하이힐. 남자들은 그 고통을 짐작도 하지 못할 뿐더러 '무지외반증'이라는 증상에 대해서도 생소한 것 같다. 선천적인 원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발코가 좁고 굽이 높은 하이힐을 오래 신은 여성들에게 나타난다.

발 모양이 하이힐의 바닥 모양처럼 변하는 것이다. 두번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과 겹쳐지거나 관절이 탈구되고 새끼발가락 쪽에서도 관절이 돌출될 수 있는데 그럴 땐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발이 변형된 여성들의 수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오늘도 거리에는 가느다란 발목과 긴 다리를 뽐내느라 많은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걸어다닌다.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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