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달 초 발표된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사실상 '낙제점'으로 결론 내리고 새 판을 짤 것을 요구하자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 4월 곽승준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돌출 발언으로 촉발된 사교육비 문제가 당ㆍ정 간의 오랜 논의를 거쳐 '사교육비 경감 대책' 발표로 일단 봉합되는 듯 했으나, 이 대통령이 제동을 걸면서 교과부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교과부는 24일 안병만 장관 주재로 사교육 관련 간부들이 모여 이 대통령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한 '제2의 사교육비 대책' 논의를 시작했지만 뾰족한 아이디어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도 안돼 다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는 건 무리"라면서도 "하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워낙 강경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새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교과부는 4일 학원교습 시간 단축의 경우 시도교육감 협의회에서 협의한 뒤 추진하고, 외국어고 영어듣기 평가는 공동 출제하며, 내년 3월부터 교원능력개발평가제(교원평가제) 전면 시행 등의 내용이 담긴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교육계 주변에서는 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필연적으로 만들어질 '2차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교과부가 주도하기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대통령이 "교과부는 뭘 하고 있느냐", "학원 로비의 힘이 센 모양" 등의 발언으로 교과부 방안을 실패작으로 규정한데다, 교과부 내부에서 조차 "이미 정부 손을 떠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2차 사교육비 대책은 당이 앞장서 만들고 정부가 측면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26일 개최할 '사교육과의 전쟁 어떻게 이길 것인가' 주제의 토론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여의도연구소와 정두언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주요 사교육비 절감 방안이 제시될 예정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정부 대책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할 방안이 소개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방과 후 학교의 민간위탁 운영 강화, 외국어고 입시 수학ㆍ과학 가산점 완전 폐지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국제중, 자율형사립고 등 사교육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학교 유형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다시 도마에 올리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지적도 적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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