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존엄사 인정 환자로서 23일 오전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김모(77)씨에 대해 담당 의료진은 "김씨가 앞으로 2~4주 정도 자발호흡을 유지한다면 장기간 생존할 수도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김씨는 호흡기를 뗀 뒤 곧 숨을 거두리란 예상과 달리 스스로 호흡하며 맥박수, 혈압 등에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주치의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박무석 교수는 24일 "체내 깊숙이 삽입돼서 기관지나 폐에서 생기는 가래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던 호흡기 관을 뗐기 때문에 폐렴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도 "정기적 석션(suctionㆍ가래를 몸밖으로 뽑는 조치)으로 2주에서 한 달 가량 폐렴이 안 생긴다면 환자 상태가 안정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호흡기 제거 후 장기간 생존한 사례가 있다. 1975년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미국인 캐런 앤 퀸런(당시 21세)이 대표적인 경우로, 그녀는 이듬해 존엄사 시행 후에도 9년간 살아있다가 85년 감염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박 교수는 "다만 석션으로 침, 가래 등 체내 분비물을 완벽히 제거할 수 없는 상태라 언제든지 환자가 위독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폐렴과 함께 향후 김씨의 유력한 사인(死因)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감염 가능성에 대해선 "김씨가 중환자실에서 1인실로 옮기면서 감염 위험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밝혔다.
김씨의 상태에 대해 박 교수는 "의학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로 김씨는 다른 뇌사 환자와 달리 뇌간 기능이 일부 살아있어 호흡이 가능한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씨가 호흡기를 달고 있을 때 자발호흡 능력을 알아보려 분당 호흡수를 10회 이하로 낮췄더니 금세 호흡 곤란이 왔었다"며 김씨의 자발호흡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김씨가 호흡이 안정화되고 위험한 고비를 한두 달 넘긴다면 세브란스병원 가이드라인에 비춰볼 때 김씨는 2단계(인공호흡이 필요한 식물인간)에서 3단계(자기호흡이 가능한 식물인간)로 좋아진다고 볼 수 있다"며 "뇌사 상태인 1단계 환자를 제외하고, 2단계부턴 존엄사 시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대법원의'존엄사 판결'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씨측 신현호 변호사는 "의학적으로 3~6개월 만에 돌아가신다면 죽음임박단계로 볼 수 있다"며 "성급하게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는 듯한 병원 측 태도는 사법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씨의 맏사위 심치성씨는 "원활한 치료를 위해 환자를 계속 병원에서 모실 것이고, 의료진이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 가족-병원 간 '의료사고' 재판 곧 열릴 듯
김씨에 대한 인공호흡기 제거로 '존엄사 소송'은 일단락됐지만, 김씨 가족과 세브란스병원 사이에 송사가 남아있다.
지난해 2월18일 김씨가 폐암 여부 확인차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 출혈에 의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가족들은 "의료 과실에 의한 사고"라며 3월4일 학교법인 연세대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6,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 중엔 김씨가 입원했던 지난해 2월16일부터 현재까지의 치료비 중 환자부담금 1,670여만원이 포함돼 있다. 가족들은 또 "환자가 호흡기 제거 후 자발호흡을 하는 점으로 봤을 때 호흡기 부착은 분명한 과잉진료였다"며 25일 환자와 가족들의 피해에 대한 위자료 4,000만원을 추가로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송에서 병원 측이 패소할 경우 최고 1억 원의 손해배상 외에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보험급여 1억9,000여만원도 반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 대리인인 백경희 변호사는 "병원 측 진료 기록과 환자 회생 가능성에 대한 의사 감정 결과를 법원에 제출한 만큼 재판이 곧 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의 아들은 지난해 2월28일 조직검사 당시 주치의였던 김모 교수 등 의사 2명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수사 지휘를 맡은 서울서부지검은 김씨가 임종하는 대로 영장을 발부받아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김씨의 맏사위 심치성씨는 "가족들은 부검을 원치 않지만, 고소를 취하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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