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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그림과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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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그림과 소설

입력
2009.06.2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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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작 <여름의 흐름> 으로 스물 셋의 나이에 1967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어느날 그는 그림 한 점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16세기말 작자 미상의 <일월산수도병풍> 이었다. 오사카의 곤고지(金剛寺)에 소장된 6곡 쌍폭의 진품도 아니었지만 거대한 산과 바다와 숲의 풍경에서 그는 한 인간의 파란만장 삶과 예술혼의 냄새를 맡았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20년 후인 지난해 명검 두 자루로 복수와 방탕의 세월을 보낸 끝에 해탈의 마음으로 명화를 남긴 떠돌이 검객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소설 <해와 달과 칼> 이다.

▦미국의 여류작가 수잔 브릴랜드. 잊혀진 천재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세상에 널리 알린 소설 <델프트 이야기> (1999년)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녀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 그림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의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 이었다. 이 그림의 진본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한참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밝고 유쾌한 느낌, 행복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중에 르누아르의 아내가 된 알린느 샤리고까지 등장하는 그 그림에서 화가와 실존 모델들의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때문이었다.

▦소설 <뱃놀이 하는…> 은 다큐드라마와도 같다. 르누아르가 그림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해박한 미술사에 근거한 '사실'로 서술하면서, 그때 만난 젊은 재봉사로 모델이 된 샤리고와의 사랑도 함께 펼쳐보인다. 소설적 감성과 상상력은 르누아르의 행복하지만은 않은 삶과 예술세계를 드러내고, 그림을 그린 장소인 센강 샤투섬의 메종 푸르네즈식당 여주인 알폰진의 르누아르에 대한 애틋한 연모까지 끄집어낸다. "내게 그림이란 즐겁고 예쁜 것이어야 해" "아름답게 그려야 해"라는 화가의 말에서 작가가 발견한 역설들이기도 하다.

▦ "그림이 더하지 않아도 현실에는 유쾌하지 못한 것이 이미 너무 많아 밝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그림만을 그린다는 르누아르 전시회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9월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관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휠체어에 앉아있는 말년의 르누아르 사진을 만난다. 류머티즘으로 마비가 오자 끈으로 붓을 묶어 <목욕하는 여인들> 을 그린 오른손이 오그린 채 소매 안에 숨어있다. 르누아르의 어느 그림이라도 좋다. 꼭 <뱃놀이 하는…> 이나 <그네> <시골무도회> 같은 유명작품 일 필요도 없다. 그림 앞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보자. 그것이 소설가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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